송복칼럼-정치 신인들

입력 2000-04-24 00:00:00

'한 세대가 가면 한 세대가 온다'이것은 생물학적 철칙인 동시에 사회적 철직이다. 철칙은 영어로 '아이언 로(iron law)'다. 글자 그대로 어떤 조건하에서도 바뀌지 않는 법칙을 말한다. 보통의 법칙들도 조건따라 쉽사리 바뀌지 않는 특징을 갖는다. 하물며 '철'이라는 머릿글자가 붙은 철칙이야 쉽게 바뀔 수 있겠는가.

우리 경우에도 어느 부문에서나 신세대가 '유난히' 많다. 특히 우리 정치사에서 정치 신세대가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전 선거들에 비해 정치신세대가 '유난히'많이 눈에 띈다. 적어도 선거만을 가지고 본다면 '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가 오는' 세대교체가 우리의 경우 다른 어느 나라보다 잘 일어나고 있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리 정치는 3김(金)에 늘 지배당하는 정치며, 구닥다리 정치인들이 늘 지배하는 정치가 되어 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신인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대 위로 올라오는 정치신인은 많은데 올라오기가 무섭게 곧 사라지기 때문이다. 설혹 사라지지 않는 신인이 있다해도 얼마 안가 구닥다리 정치인이나 다름없이 싹수가 노랗게 물들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신인들을 두고 어떤 사람은 정치선배들이 후배를 양성하지 않기 때문이라 말하고, 어떤 사람은 양성이고 뭐고 이전에 원래 그런 사람들이 정치신인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느 주장이든 다 통하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좀 못난 후배도 잘난 선배가 이끌어 주고 밀어주면 크게 성장할 수 있고, 그런 선배가 없다해도 본인이 출중하면 남의 도움에 관계없이 얼마든지 뻗어갈 수 있다. 그 어느 경우도 우리 정치신인들에겐 잘 맞지 않아서 처음 등장할 때의 기대와는 달리 고사해버리는 신인들이 '유난히' 많은 것 같다. 일본 역사에서 지난 천년 동안 최대 사건이라 일컫는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은 20대와 30대 초반의 신인들이 이뤄낸 혁명이다. 이 혁명의 주역으로 활동한 나이가 가장 많다고 하는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도 유신 당시 마흔살을 겨우 넘겼다. 메이지유신의 분수령이라고 하는 사츠마(薩摩) 죠우슈(長州) 동맹을 성사시킨 사카모토 료오마(坂本龍馬)도 32세 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도 우리의 근대화 산업화를 일구어낸 사람들은 30대와 40대 초반의 정치신인들이었다.

그런 면에서 오늘의 정치신인들,소위 말하는 386세대는 결코 적은 나이라 할 수 없다. 예나 이제나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 해서 30을 넘어서면 자기 주견(主見)을 얼마든지 세우고도 남는 나이다. 설혹 경륜은 모자란다 해도 이상도 비전도 얼마든지 높이 설정할 수 있다. 이 신인들이 얼마나 기대에 부응하는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느냐는 오로지 자신에게 달렸다. 특히 386세대는 투지력으로 보나 저항과 도발의 정신으로 보나 구닥다리 정치인들에게 기댈 필요도 기댈 이유도 없다. 물론 현실 통찰력이나 결집력은 미지수다. 뿐만 아니라 다음 다음 선거에서 얼마나 살아남을지도 알 수 없다.

그런 불가예측이 있다해도 젊은이다운 패기는 늘 가지고 있어야 한다. 며칠전 청와대에서 가진 낙선자대회에서 386세대의 한 낙선자가 보인 정치신인이라 하기엔 너무 맞지 않는 그같은 해프닝을 단 한번이라도 보여서는 안된다. 모두가 서서 말하는 자리에서 그 정치신인이 느닷없이 무릎을 꿇고 큰 절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낙선은 했지만 공천을 준 것이 너무 황공해서일까. 아니면 다음을 기약해서일까. 어느 것이든 전혀 젊은이답지 않고, 더구나 386세대라는 신세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논어(論語)에 군자는 구저기(君子求諸己:'~으로부터'의 의미일땐 '저'로 읽음)라 하고 소인은 구저인(小人求諸人)이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군자는 모든 것을 자기에게서 구하고, 반대로 소인은 모든 것을 남에게서 구한다는 것이다. 군자는 자기가 자기를 만들고 키운다. 군자는 절대로 남을 탓하지 않고 남을 통해 성취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 정치신인들도 권력자에 기대려 하지말고, 줄서려 하지 말고, 눈치보려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정치신인 수가 많을 때 비로소 정치적 세대교체도 가능해진다.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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