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자연신화의 도태2

입력 2000-04-20 14:09:00

얼마전 텔리비전에서 '캄차카 트로피 사냥'의 실태를 잠깐 방송한 적이 있다. 겨울잠에서 막 깨어난 곰을 헬리콥터로 추적해 궁지로 몰아넣은 다음 탄환을 장전한 사냥꾼들이 총을 들고 서있다가 허겁지겁 도망쳐 오는 곰을 잡는 기상천외한 놀이였다. 자연보호협회는 막 잠에서 깨어나 움직임이 둔한 곰사냥에 헬리콥터라는 첨단장비까지 동원한 것은 매우 정당하지 못한 방법이라며 분개하고 나섰다는 내용인데, 이에 조금도 밑지지 않는 치졸한 일이 지난 달 우리나라 해안에서도 벌어졌다. 어쩌다 우리 해안까지 찾아든 물개가 밀렵꾼에게 잡혀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 그 주검의 모습이 사람의 짓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실로 경악스러웠다. 물개의 짧은 두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밧줄로 꽁꽁 묶어놓고 아랫도리만 싹뚝….전자는 다수가 소란을 떨며 벌인 게임형식을 띠고 있으며, 후자는 소수에 의해 은밀하게 이루어진 밀도살이다. 이러나 저러나 모두 이성을 가진 인간의 짓이라고 믿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리 약육강식이 자연계의 법칙이라 하나 이건 정말 아니다. 차라리 그물에 잡힌 고래라면 찌든 어부의 살림에 보탬이 된다는 위안이이라도 삼지, 물개 아랫도리라니… 차마 부끄럽고 낯뜨거워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한 일이다.

동물원이나 그림책에서 보던 물개가 왜 우리 해안에 들러 잠시 몸을 말리고 놀다 가면 안되는가. 기껏 돈 몇 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놓은 동물까지 가차없이 잡아버리는 지경에 놓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하얀 모래톱에 오종종 모여앉아 해를 바라보고 있는 갈매기떼를 평화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듯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계곡 사이로 사향노루떼가 힘차게 뛰어다니는 광경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자연은 반드시 인간이 베푼만큼 돌려준다. 후세 대대로 뿌리를 내리고 살 터전을 인간이 살기에 가장 적합한 땅으로 남겨주려는 노력만이 자연과 인간을 영원히 살게 한다.

소설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