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싹쓸이' 변명

입력 2000-04-20 14:38:00

衆愚라니16대 총선에서 나온 경상도 싹쓸이현상을 두고 말이 많다. 정권상실에 따른 박탈감이 빚은 한풀이라든가 패권 향수적 지역주의가 빚은 '중우정치'의 표본이라는 등 대체로 비난 일색이다. 88년도 13대 총선에서 4당구도라는 지역주의에 대해서는 대체로 황금분할이라고 긍정적 평가를 내린 것에 비하면 너무 다르다.

이는 지역주의는 악(惡)이라는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상태인만큼 이러한 비판적 분위기를 나무랄 수만은 없다. "해놓고 보니 너무 한 것 같다"는 자성의 소리가 있는 것만 봐도 싹쓸이는 심했다는 평가를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같다.

그러나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는 데, 1천300만명의 경상도 유권자가 내린 선택을 중우(衆愚)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개인의 의지는 욕심일 수 있으나 1천300만이라는 거대집단의 의지는 천심인 것이다. 따라서 싹쓸이라는 외형은 비난 받아도 좋으나 그 뜻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만은 비난 받아서는 안된다.

경상도지역의 말없는 다수 즉 민초들의 심정은 투표결과에 대해 "정말 시원하다"는 것이 결론이다. "그냥두면 큰일 나겠다 싶어 야당을 찍었다"며 DJ정부의 독주·독선에 대해 경고를 보낸 것에 만족한다는 소감 이었다. 이는 본사와 TBC가 공동조사한 여론조사에서 총선 결과에 '만족한다'가 65.9%로 나타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안정론보다 견제론에 전폭적 지지를 보낸 것이다. 이것이 민의의 뜻이고 메시지 인 것이다. 먹물의 잣대와 선택만이 선이고 진실인가. 말없는 다수의 잣대와 선택은 악이고 거짓이란 말인가.

화난 民心

"당보고 찍어야 하는가 인물보고 찍어야 하는가"가 경상도 유권자의 고민 이었다. 정당론은 현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를 의미한다. 따라서 여느때면 가장 중요한 투표의 포인트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선거개혁이 이슈가 된 탓에 인물론은 선이 되고 정당론은 사실상 악이 되어 버렸다. 지역감정의 표현 수단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상도 유권자들은 지역주의라는 비판을 감수하고 평소 표현하고 싶었던 현정권에 대한 견제와 중간평가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지역 감정도 작용한 것도 사실이고 또 바람이 도를 넘어 버린 것도 사실이다. 그런점에서는 이번 경상도의 싹쓸이는 비난 받아 마땅한 점도 있다.

그러나 먹물들의 비난처럼 명분없는 반작용은 아니며 또 경상도 사람들은 이유없는 반항아도 아니다. 왜냐하면 경상도 표심(票心)이 말하고자 하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고 또 그 뜻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DJ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이다. 인사편중 등 국정운영스타일에 대해화가 난 것이다. 둘째는 대화정치의 요구이다. 어느당에도 과반수를 주지 않은 절묘한 배합을 낳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이다. 우리나라 50년 헌정사상 한번도 해보지 못한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하라는 천심(天心) 명령인 것이다. 그래도 경상도 유권자들은 중우(衆愚)이고 이유없는 반항아들이라고 할 것인가.

이런 점에서 부산에서 출마한 노무현 민주당 부총재의 "농부가 밭을 탓할 수 있나"거나 "… 지금은 임금의 자리에 국민이 올라가 앉아있다. 그런데 감히 내가 어떻게 섭섭하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는 말은 참으로 적절하다 하겠다. 민의의 선택은 그 뜻을 잘헤아림으로써 존중 되어야 한다. 낙천·낙선 대상자가 경상도에서는 많이 당선 되었다고 해서 천심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묘하게도 경상도에서는 부정부패와 관련된 절대악의 대상자 보다는 소신과 논리의 차이에서 오는 대상자가 많았다. 그러므로 시민운동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인정하지만 공정성에 대해서는 60%정도가 의문을 가지고 있다는 여론조사로 설명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되풀이는 말아야

경상도에서는 지역감정은 전라도가 경상도 보다 더 심하다고들 한다. 싹쓸이 횟수도 4대1이고 득표율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증거까지 제시하고 있다. 부질없는 짓이다. 이제는 경상도고 전라도고 똑같은 사람이 되었다. 누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는 말인가. 다만 전라도처럼 되풀이 할 생각은 말아야 할 것이다. 되풀이 하는 것이야말로 지역감정의 고착화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아닌 싹쓸이의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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