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데스크-트루먼의 맹수론

입력 2000-04-19 15:15:00

"유권자는 맹수와 같아. 물주고 밥주는 사육사도 잠깐 한눈 팔면 물어뜯지"4·13 총선에서 참패한 JP(김종필 자민련명예총재)가 지난 1946년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중간선거 패배 후 발언인 '맹수론'을 꺼냈다.

선거패배의 참담함에 대한 '노정객'의 토로라지만 공감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JP의 비유처럼 이번 선거에서 영·호남 유권자들의 행태는 영낙없는 맹수였다. 특히 대구·경북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비(非)한나라당 후보에 대해서는 마치 내집을 침범한 적이라도 되는듯 한 입에 물어 버렸다.

동진정책, 지역개발을 앞세우며 구애를 보내던 여권 후보는 물론 오랜 표밭갈이를 해온 다수의 비한나라당 후보들에겐 몰인정했다. 반면 한나라당 후보들의 무병(無兵), 무세(無稅), 전과(前科), 낙하산 공천 등에 대해선 한없이 관대했다.

'지역색 파괴'라는 선거혁명에 대한 순박한 꿈은 오히려 '한나라당 TK 싹쓸이'라는 지역구도의 완결편으로 끝맺음 됐다.

역설적으로 이번 선거에서 지역 정치인과 유권자 모두는 패자(敗者)인 셈이며 결과적으로 스스로가 무거운 짐을 지고가야 하는 우(愚)를 자초하고 만 것이다.

또한 그 무게의 상당부분은 한나라당 당선자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먼저 여당의원이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지역사회에 대한 이들의 책임이 더욱 막중해졌다는 것이다. 현 정부들어 지역과 중앙을 연결하던 몇 안되는 인사들마저 이번 총선에서 모두 '퇴출'됨으로써 채널이 단절됐다. 지역에는 위천국가산업단지 지정, 유교문화권 개발 등 시급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때문에 지역 한나라당 의원들의 보다 많은 노력과 능력 발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또 유권자들은 그것을 원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지역정치권의 위상확보 문제다. 지역에 정치적 구심점이나 리더가 없다는 말에 별 반론도 없다. 향후 상당기간 큰 인물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말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지역의원들, 특히 대구의원들은 모래알이다. 저마다 잘난 사람들 뿐이다. 인물 키우기는 고사하고 서로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분위기다. 경북의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역민의 압도적인 지지가 지닌 의미를 곱씹어 보면 자신들의 또다른 역할이 무엇인지는 금방 알 수 있을텐데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너무 쉽게 금배지를 달게 된 데 대한 경계를 아니 할 수 없다.

선거당일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기 무섭게 자축 술판을 벌이고 기고만장한 취중망언을 했는가하면 타지 후보에게 많은 표를 던졌다며 고향민들을 몰아붙이는 오만함을 보인 당선자가 있었다는 씁쓸한 얘기도 들린다.

모두들 '내가 잘나 당선됐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번 총선의 싹쓸이는 당선자나 소속 정당에 대한 지지라기 보다는 '반(反)DJ'라는 원초적 정서가 앞선 것이었다는 점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어쨌든 선거는 끝났다. 그러나 당선자들에 대한 감시는 이제부터다. 그것은 유권자들의 몫이다. 지역과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하는지, 지역민들의 상전노릇만 하려들지 않는지, 보스에게만 충성을 하는지, 유권자들은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계속 지켜보아야 한다. 그리고 다음 선거때는 맹수의 냉철함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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