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맞대고-인터넷 게시판 문화

입력 2000-04-19 14:26:00

대구시 교육청 장학사들. 대부분 희끗희끗한 머리에 조금은 완고해 보이는 표정. 교감이나 교장 경력을 가진 이도 있고 얼마 안 있어 교장, 교감으로 나갈 사람도 있다. 오전 8시를 전후해 출근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컴퓨터를 켜는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에 접속한다.

찾는 곳은 시교육청 게시판. 올라온 글들 가운데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 있으면 대답하거나 표현이 심한 것은 삭제하고, 필요한 부분은 학교에 통보하기도 한다.

ㄱ고 1학년 오모군. 학교를 마치면 곧장 PC방으로 달려간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인터넷부터 접속한다. 방문지는 대구시 교육청 게시판. '오늘 선생님이 급우를 손찌검했다' '머리 단속이 심해 못 살겠다' '영어 선생님은 너무 못 가르친다' 등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나 불만을 고스란히 적어올린다.

▲북적대는 교육 게시판

인터넷이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붐비는 사이트는 다양하지만 공공기관 홈페이지 게시판도 빼놓을 수 없다. 각종 민원과 불만, 고발을 마음대로 쏟아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 이 가운데 교육기관의 게시판에는 학생, 교사들이 매일매일 숱한 글들을 올린다.

인터넷은 정보의 자유가 거의 전면적으로 보장되는 곳이므로 게시판 글들도 자유분방하다. 교육부 홈페이지는 물론 대구나 경북 교육청 홈페이지에 들러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그동안 '말문'이 막혔던 탓일까. 자신들의 의견을 분출할 공간을 찾은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의사를 밝히고 주장을 내세운다. 인터넷이 제공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글들을 살펴보면 속속들이 알기 힘든 학교현장의 이야기가 물씬 풍겨나온다. 학생이나 교사들이 보는 문제점도 지적된다. 개선을 바라는 참신한 내용도 더러 있다. 물론 근거가 약한 소문을 부풀린 것이나 일방적인 성토와 비난, 대책없는 요구도 많다.

▲초보 인터넷 문화

교육기관 관계자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옳은 지적, 건전한 비판, 진지한 질문에는 당연히 성실한 답변과 업무처리가 뒤따라야 한다. 반면 근거 없거나 일방적인 비난에도 적극 대처해야 한다. 일부 학생, 교사가 가진 생각이 자칫 전체의 일반적인 문제로 비칠 가능성이 큰 탓이다.

인터넷이 워낙 단기간에 보급된 탓인지 사용 문화는 초보 단계다. 익명성을 핑계로 일방적인 비판·비난은 보통이고 욕설도 마구 쓴다. 반대 의견이 올라오면 논리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가차없이 공격해댄다. 토론 문화는 아직 찾기 힘든 실정이다.

대구시 교육청 이경택 장학관은 "아직 과도기 상황이라 불가피한 현상이지만 교육적 측면에서는 우려되는 면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싸잡아 매도하거나, 찬반이 양존하는데도 자신의 주장만 강요하는 것은 학생 시절에 가장 피해야 할 자세라는 것. 특히 신분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마구잡이로 글을 써대는 습관을 들이면 정작 나서서 주장을 펼치거나 토론을 벌여야 할 때 벙어리가 됐다가 뒷전에서 불만만 쌓기 쉽다는 지적이다.

▲자유 속의 절제 필요

대구시 교육전산망 '에듀넷'에는 지난 15일 토론이 개설됐다. '건전한 사이버 문화 정착'이 주제다. 개설한 시교육청 관계자는 "게시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많지만 장난이나 비방, 욕설로 도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통신예절에 대한 방문자들의 의견을 묻고 있다.

오죽하면 이런 토론을 열었을까. 역시 재미 없는 주제라 4일이 지나도록 단 2건의 글만 올라왔다. 보충수업이나 두발단속, 특기·적성교육 등에 대해 토론을 개설했으면 상황은 어땠을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게시판 중간중간에 보이는 글들이다. 다른 학생과 견해차가 나는데 대해 진지하게 지적하고 토론을 요청하는 글, 잘못된 통신문화를 꼬집는 글, 학생다움과 교육을 강조하며 익명 뒤에 숨은 얼굴을 보이자는 글 등.

한 교사는 "갈수록 통신문화는 개선될 것으로 본다"면서 "학생들도 자신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최소한의 예절은 지켜야 한다는 점을 알고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쏟아지는 글들, 낮은 수준을 이기지 못해 문을 닫는 게시판도 더러 있다면서. 金在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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