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총선이 남긴 것

입력 2000-04-15 14:28:00

새천년 첫 선거인 16대 총선은 새로운 정치문화와 선거풍토 정립을 염원하던 국민들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비록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이 위력을 발휘하고 선거사상 처음 도입된 납세.병역.전과 등 후보검증 제도가 선량의 선택에 중요한 기준이 되긴 했지만 전반적인 선거양상은 금품과 흑색선전이 판치는 불.탈법의 구태를 벗지 못했다.

◇지역구도

역대 선거사상 최대의 접전이 펼쳐졌던 이번 총선은 또 종전에 비해 지역색채가 엷어지는 조짐속에서도 한나라당이 영남권 의석을 휩쓸고 민주당이 호남에서 단연강세를 보이는 지역대립의 큰 틀을 깨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한나라당은 영남권 65석 가운데 울산 동구에서 무소속 정몽준(鄭夢準) 후보가 당선된 것을 제외하고 64석을 석권, '동진(東進)정책'을 앞세운 여권의 동서화해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총선 결과가 영남 유권자들의 유례없는 결집으로 나타남에 따라 현 정권은 향후 정국 운영에 큰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게 됐고, 지역구도 타파라는 해묵은 숙제를 원점에서부터 다시 풀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호남에서는 무소속 후보 4명이 당선돼 표면적으로는 민주당에 대한 호남 지지표의 견고성이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당선된 무소속 후보들이 모두 '당선후 민주당 입당'을 공언한 친여 무소속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획기적 의미를 찾기 어렵다.다만 민주당이 15대 총선에서 단 1석도 얻지 못했던 충청과 제주에서 상당한 의석을 확보했고, 강원에서도 약진함으로써 전국정당화와 지역구도 타파의 단초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혐오

이번 총선을 통해 확인된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정치 냉소주의'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선관위가 집계한 16대 총선 투표율은 57.2%로 역대 총선 사상 가장 저조한것으로 나타났고 20, 30대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율 역시 이전의 총선때와 마찬가지로 평균치를 크게 밑돌았던 것으로 추산됐다. 민주당의 의석이 당초 예상보다적게 나온 것도 수도권 청년층의 기권이 상당히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시민단체 낙천.낙선운동을 계기로 한때 네티즌과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 투표참여 운동이 붐을 이루기도 했지만 실제 투표로 이어지지 않는 거품에 불과했음이 드러난 셈이다.

국민으로서의 신성한 권리를 행사하는 투표행위를 '촌스럽다'거나 '유행에 뒤떨어지는' 일로 여기는 젊은 유권자들의 태도를 변화시킬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홍보활동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불법 선거운동.선거제도

선거운동과정에서 여야 후보들 사이에 흑색선전과 인신공격성 폭로가 극에 달했고, 금품 살포 시비가 끊이지 않았으며 일부 과열 선거구에서 폭력사태까지 벌어지는 등 구태가 재연된 점도 새로운 선거문화 창출이라는 숙제가 줄어들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후보자의 재산, 병역, 납세, 전과 등의 자료가 유권자 앞에 공개됨으로써 좀더 다양하고 정확한 선택의 기준을 제시했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됐으나, 관련법규의 정비가 절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납세실적의 경우 재산세와 소득세 항목으로 제한돼있고 금융소득에 대한 납세실적은 정확한 현황 파악이 어렵다는 한계를 노출했으며, 전과기록의 경우 공개대상전과의 기준과 범위를 놓고 논란이 계속됐다.

이와함께 현역 의원은 공식 선거운동 기간전에 의정보고회 등을 통해 사실상의 선거운동을 마음놓고 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는데 비해, 정치신인의 입과 손발은 꽁꽁 묶는 불공정한 선거법 규정도 정비돼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이번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미치는 시민단체의 역할이 커졌고 국민의 참정권이 확대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은 위안거리가 됐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 대상자 선정기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내용상 실수가 뒤늦게 밝혀져 정정하는 소동도 적지 않아 시민단체의 좀더 신중하고 무게있는 활동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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