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이후의 지역 정가(1)

입력 2000-04-14 14:18:00

◈한나라 영남1당체제 '새구도'제16대 국회 주인공들의 면면이 결정됐다. 지역에서도 익은 얼굴이 사라지고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했다. 중진.거물급의 탈락과 이름도 얼굴도 잘 모르는 신인들의 등장 등 개개인의 측면에서도 변화가 있겠지만 여야 각 정당을 놓고 볼 때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특히 이번 총선이 2년여 앞으로 다가온 16대 대선의 밑그림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남다르다 하겠다. 이에 총선 이후 지역 정치권을 진단해 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

4.13 총선의 결과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여당의원은 한 사람도 없고 야당의원만 존재하는 호남지역 같은 양상이 나타났다. 새 천년의 첫 선거답게 지역정치권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1당 지배체제라는 새로운 구도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어차피 정치가 현역 국회의원 중심이라는 점에 무게를 둘 때 여야간의 견제와 균형도 없고, 있다면 인간적인 친.소관계로 편이 갈리는 현상만이 있을 뿐이다. 또한 지금처럼 뚜렷한 중심추가 없는 지역 한나라당 인사들이 '각개전투'로 나갈 경우 지역의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우선 97년말 정권교체를 즈음해 드높던 민주당(당시 국민회의)의 기세는 이번 선거결과로 크게 꺾일 수 밖에 없어졌다. 다만 비례대표로 지역출신 몇몇 인사가 여당 의원의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는 점은 위안거리다. 또 불과 4년전 돌풍을 일으키며 대구지역을 휩쓸었던 자민련 역시 등돌린 민심 탓에 근거마저 뿌리째 뽑히는 수모를 당하고 막을 내려야 하는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정권상실로 실의에 차 있던 한나라당은 2년여 앞으로 다가온 차기 대선에서 정권을 되찾아 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대선 직후 위축됐던 당세를 급속히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역 한나라당 인사들의 '한나라당의 중심은 대구.경북'이라는 주장은 헛구호에 그칠 공산이 크다. 4.13총선을 계기로 이회창 총재의 지역에 대한 장악력은 더 강화됐다고 밖에 볼 수 없는데다 중심인물이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지역 인사들을 중심으로 나오던 "이 총재가 경기고.서울법대만 감싸고 돈다"는 비판도 쑥 들어갈 전망이다. 한나라당이 반DJ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한 영남권의 표는 한나라당에 쏠릴 수밖에 없고 그에 비례해 이 총재의 말발은 더욱 세질 것임을 이번 총선은 너무 뚜렷하게 입증했기 때문이다.

또 "이 총재의 권위에 대한 도전은 곧 몰락"이라는 기류가 한나라당을 강하게 지배할 전망이다. 대권도전의 확실한 기반을 다진 이 총재에게 도전하기보다는 '줄서기가 보신(保身)에 더 낫다'는 분위기가 팽배할 것이고 이는 대구.경북이라고 예외일 수가 없다.

따라서 3선 이상의 몇몇 인사들이 허주(김윤환 의원)의 빈 자리를 대신하려는 경쟁에 나설 전망이지만 그보다는 이 총재와의 거리좁히기 다툼의 열기가 뜨거워질 전망이다. 따라서 선수(選數)보다는 이 총재의 측근인지 여부가 지역 한나라당의 중심인물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잣대가 될 전망이며 이들이 이 총재의 대리인으로 나서는 '위임정치' 구도가 출현할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한편 지역구에서 교두보를 확보하려던 눈물겨운 몸부림에도 고지를 눈앞에 두고 좌절한 민주당의 경우 정상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득표율은 다소 높였지만 정권초기의 기세를 발판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금배지 배출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볼 때 권력누수 현상을 보일 DJ정권 후반기의 지역 민주당이 맞닥뜨릴 현실은 더욱 냉엄할지 모른다.

암담하기는 자민련의 정도가 더하다. 지역구에서 전멸했음은 물론이고 비례대표도 한 사람 배출하지 못했다. 게다가 중앙당마저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함으로써 당의 운명자체가 위협을 받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그래도 한 두 석 정도는 건질 수 있을 것이라던 전망이 여지없이 무너졌다는 점에서 지역 자민련 인사들이 받은 충격은 측량하기 어려워 보인다.

당장 당세의 급격한 위축과 함께 명실상부한 '충청도 당'으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지역출신 자민련 인사들의 이탈 현상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에 따라 자민련 시.도지부는 아예 간판마저 내려야 하는 상황으로 치달을 지도 모를 일이다.

영남정권 창출론마저 제기하며 '반 이회창'과 '반 DJ' 기치를 높이 내건 민국당은 총선전 문을 열었다가 선거전이 종료되면 문을 닫는 포말 정당, 선거용 정당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회생의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李東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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