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방송사의 엉터리 출구조사

입력 2000-04-14 14:32:00

오늘의 우리 사회는 여론에 따라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라의 정책은 물론 사회적 쟁점이 되는 사안, 심지어 소비자들이 물건 하나를 사는 데까지 여론이 중시된다. 과학이 그만큼 예언과 예측의 거리를 좁혀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여론조사는 어떤 경우에도 정확해야만 한다.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자료 분석에 의해 국민들의 뜻이 그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의미와 가치가 없어져 버린다.

그러나 이같이 과학을 앞세운 예측행위가 인위적인 행위의 개입으로 빗나가 기대를 배반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설문 작성, 표본 추출, 조사 방법에 따라 예측에 상당한 오차가 생기기도 한다. 여론조사를 '여론 조작'이라며 무용론을 제기하는 것도 그런 함정을 경계하는 말이다. 여론조사가 정확하다면 그 '과학적 예측'에 이변이나 충격이 나올 수가 없다.

우리는 어제 총선 결과를 놓고 방송사들이 성급하게 당락을 보도한 내용과 실제 결과가 엄청나게 어긋난 것을 보았다. 15대 총선에 이은 출구조사였지만 불신감은 둘째 치고라도 정부 여당을 편드는 듯한 보도로 방송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정말 출구조사를 했느냐'는 말이 나왔고, 80개 지역 외에는 3.4일 전 조사를 적용한 '엉터리'였음도 밝혀졌다.

출구조사 결과의 신뢰성은 개표 방송 시작 때부터 이미 금이 갔다. 방송3사의 1위 예측에서 무려 20여곳이나 달랐으며, 오차 범위 내에 있는 지역구가 40여개에 이르렀음에도 성급하게 당락을 단정했다. 그 결과 제1당마저 맞추지 못했으며, 인터뷰와 자축까지 한 뒤 고배를 마시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으니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이번 출구조사 해프닝은 웃지 못할 코미디로 끝났지만 4년 전 여론조사와 똑같은 실수를 범해 차라리 하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결과를 또다시 빚었다. 방송사의 선정적인 보도와 조사기관의 무책임한 당락 판정은 앞으로 반드시 개선돼야 할 문제점이다. 지금 방송이 할 일은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려는 뼈아픈 반성과 노력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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