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길 나의 삶-양희규 간디학교 교장

입력 2000-04-12 14:06:00

봄 길이다.옹송거리며 핀 개나리 길. 남녘이라 바람에도 산나물 맛이 난다. 지리산과 덕유산이 만나는 경남 산청. 마른 물을 힘겹게 흘러 보내고 있는 경호강을 따라 진주쪽으로 달린 지 10여분. 왼쪽에 둔철산 자락이 보인다.

'간디학교' 표지판을 따라 난 좁은 길. 꼬불 꼬불난 마을길을 벗어나자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첩첩이 포개 놓은 논, 나지막한 언덕에 우뭉하게 서 있는 소나무 몇 그루, 그 뒤로 둔철산의 웅장한 모습이 그대로 동양화의 한 폭이다.

경남 산청군 신안면 외송리. 대로에서 산으로 1.6㎞ 떨어진 간디학교는 '숲 속 마을 작은 학교'답게 진달래꽃이 흐드러진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었다. 아이를 아이답게 키우려는 대안(代案)학교. 조그마한 운동장을 두고 양지바른 남향으로 중·고 교사(校舍)와 강당, 음악실, 교무실 건물 6동이 붙어 있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다.

험한 산에 땅을 일궈 농장을 만들고, 학교를 세워 아이들의 웃음소리 가득하게 만든 인물, 양희규(42)교장.

허름한 작업복차림에 깡마른 몸, 턱수염 위로 유난하게 반짝이는 눈이 인상적이다그는 미국 유학을 한 철학 박사며 대학 교수까지 지냈다. 또 충북 제천 박달재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구미 금오산 자락에서는 혼자 움막을 짓고 생활했다. 경기도 강화읍에서는 무소유 공동체를 이루며 극빈(極貧)의 삶을 살기도 했다.

촌집 사랑방처럼 자그마한 교장실에서 양 교장은 앉자마자 '길이 없다고 갈 수 없는가'라는 말을 불쑥 꺼냈다. 그의 길은 무엇일까.

어떤 길이 길래 교수직을 버리고, 미국 유학까지 가서 딴 철학박사마저 내팽개치고 이 산골에서 농사지으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현실 도피거나 도를 닦는 '기인' 도 아닌, 평범한 생활인의 모습을 하고서.

그는 여러 길을 만났다. 대학(계명대 78학번)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했다. 일류병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전교(부산 대동고) 3, 4등의 우수한 성적임에도 서울행을 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용학문인 경제학은 그의 지적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다. 더구나 대학 2학년 때는 '나는 왜 불행한가'라는 고민에 빠졌다.

"이때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것이 일본 와세다대 철학과 교수가 지은 '길이 없다고 갈 수 없는가'라는 책이었습니다" 새벽 2시까지 탐독한 후 "인생의 밝은 빛이 스며드는 놀라운 느낌을 받고" 그 길로 경제학 전공서적을 보따리 싸서 친구에게 주고 같은 대학 철학과로 편입했다.

철학은 근본 원리를 따져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성격에 꼭 맞았다. 학자의 꿈을 품고 지난 85년 대학원(서울대)에 진학했다.

그의 인생은 비폭력과 무소유 정신의 지주인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를 만나면서 또 한번 전기를 맞는다. "간디 선생은 진리 앞에서 단순했습니다. '이냐 안 아니냐' 보다 '옳으냐 옳지 않느냐'라는 실천의 문제를 따졌고 그 진리대로 행했습니다" 무엇보다 간디에게서 본받고 싶었던 것이 노동하는 삶이었다. 간디농장을 세우고 교명을 '간디'라고 지은 것도 톨스토이농장을 세웠던 간디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었다.

대학원 시절 박달재와 금오산 뒷자락에서 낮에는 노동하고 새벽에 공부한 것이나 대학원 졸업 후 그루터기 선교회(경기도 강화읍)에서 하루 16시간 노동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친 것도 간디의 교훈이 힘이 됐다.

그루터기 선교회에서의 삶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대학시절 만났던 아내(김현진·38)와 결혼, 신혼여행도 가지 않고 학교에서 일을 했다. 가구라야 라디오와 구닥다리 앉은뱅이 장롱이 고작인 극빈의 삶. 영양실조로 만삭인 아내가 쓰러지기도 했다.

이때 그는 가난의 구조적 모순과 악순환, 사회정의 문제 등으로 한국에 대해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89년 홀연히 떠나 5년 간 미국 산타바바라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한번도 흙을 떠난 적은 없다. 대학 구내에서도 20여 평의 땅을 허락 받아 호박이며 고추를 심어 가꾸었다. 그러면서 그는 공동체 삶을 통해 생명이 살아 숨쉬고 모든 인간이 똑같이 대접받는 새로운 체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깨달았다. 94년 철학박사(논문 '정치적 의무와 불복종')가 돼 귀국한 후 대학(계명대) 강단에 서기도 했으나 끈질기게 그를 사로잡는 곳은 흙이 있는 농촌이었다.

"21세기는 생태마을(Eco-village)이나 대안교실 등 공동체를 통한 대안문화가 하나의 큰 흐름으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과 같은 인간중심이 아닌 자연 친화적인 우리 본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하며 빈부격차, 환경파괴, 과학만능, 경제제1주의 등 현대문명의 모순과 비합리성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요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진정한 철학자의 길이다. 그렇다고 강단에 설 생각은 추호도 없고 "철학자로 자유롭게 사유하고 농사도 지으며 살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면 15년 간 화두로 품어온 공동체 삶의 꿈을 실현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현실의 벽으로 인해 포기했다는 말인가. 기자는 의문이 들었다.

그는 그동안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이제 철학자로, 자유인으로 삶의 깊은 면을 추구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둠을 한탄하기 보다 촛불을 하나 켜는 것이 낫다는 소신으로 자신은 촛불을 켜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돌아서는 기자에게 그는 "이제 세상 공부 할 차례"라는 말을 덧붙였다. "35세까지 형이상학을 공부하고, 50세까지 세상을 공부하고, 그 다음에야 진정한 철학자가 될 수 있다"는 플라톤의 말을 인용, "애들에게 뭘 가르쳐야 할지 좀 더 공부 해야겠다"고 말했다.

애써 좁은 길을 택하고, 길이 없다면 길을 만들며 살기로 했던 양 교장. 그의 새로운 길이 단순한 지식인의 소박한 꿈으로 끝날지 아니면 도약을 위한 '공동체 인간'의 몸짓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는 아직 마흔 둘이다.-金重基기자

---간디학교는 어떤 곳

남자애들이 귀고리하고,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것이 놀랍다. 양 교장은 "외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육은 사랑으로, 또 가르침과 배움이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간디학교는 지난 94년 12월 문을 연 간디농장이 그 산실이다. 그동안 계절학교와 성인교육을 주로 하다 97년 3월 27명의 학생으로 정식 중·고교 과정을 개설했다. 현재 학생은 103명. 교사는 20명이며 강사 5, 6명이 출강한다.

중·고 과정이나 학년이 나뉘지 않는 통합 학제로 영국의 섬머힐 등 대안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학제와 비슷하다. 교육방식은 주로 토론식으로 진행되며 국어 영어 수학 등도 배우지만 철학교육을 중시한다. 옷 짓기, 빵 굽기 등 모든 것을 직접 해보는 것이 특징이며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고 한달에 한번 3박4일 외출이 허용된다. 고교 과정은 정규학교로 인가 받았고 조만간 중학과정도 인가 받을 계획. 교육비는 월 35만원(공납금 15만원, 숙식비 20만원) 0596)973-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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