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후 조정역 그친 국정원

입력 2000-04-12 00:00:00

북한에 관한 한 가장 믿을만한 '비선'(秘線)으로서 남북간 대화물꼬가 막힐 때마다 은밀히 '해결사' 역할을 수행해 왔던 국가정보원이 이번의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협상 때는 '막후 조정자' 역할에 머무른 흔적들이 감지되고 있다.

간간이 들춰지고 있는 그간의 '비밀 막후협상' 과정을 보면 협상 초기에는 국정원 당국자가 맡았다가 나중에는 의외의 인물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바뀐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정상회담 합의서를 발표한 10일 정부가 정상회담 협상 특별팀을 가동했다는 사실을 사후 공개하면서 "초반기 북한과 접촉에 국정원 당국자가깊숙하게 관여한 것으로 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북한의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측 인사가 국정원 당국자에 대해 탐탁잖은 반응을 보여 이 당국자는 일단 2선으로 물러났다"고 털어 놓았다.

북한은 박지원-송호경 첫 접촉이 이뤄지기 하루 전인 지난달 16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보도에서 "최근 남조선 정보원이 주제넘게 북.남 대화에 머리를 들이밀려고 하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문제로 되고 있다"며 "정보원이 뻔뻔스럽게도 대화에 낯짝을 들이민다면 이것을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대화 파탄 책동으로 간주할 것이며 그에 상응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과적으로 국정원에 대한 북측의 강경한 반발이 국정원 당국자에서 박 장관으로 협상 실무 책임자가 바뀌게 만든 하나의 계기로 작용한 셈이다.

당시 국정원측은 조평통의 주장에 대해 정확한 시점을 밝히지 않은 채 "최근에(남북대화에) 개입한 적이 없다"고 강조한 뒤 "조평통의 주장은 국정원이 남북대화를 방해하고 있는 듯이 보이게 하려는 북측의 선전공세로 보인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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