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향토출신 재일동포들(24)김헤경 박사

입력 2000-04-03 14:16:00

97년 1월 일본 도쿄 젊은이의 거리 록봉기(六本木) 부근 아자브(麻布)미술관에서 '생명 그리고 생명--지구의 나래이티브'라는 제목의 김혜경 작품전이 열려 도쿄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작가는 전시관 3층 전관의 공간을 이용, 통일신라시대 십이지신상을 묘사한 병풍형 작품으로 또는 고대 지석묘의 역사적 인용을 통해 가상현실적인 작품들을 선보였다. 전시를 위해 특별히 작곡된 선율을 전시 공간에 흐르게 하고 스폰서 화장품회사에서 제작한 향기를 은은히 느낄 수 있게 했다.

한 일본인 평론가는 "한국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내고 일본서 활동을 하는 이 예술가의 작품을 보면 동양적인 윤회사상이 포함된 미술품에서 오히려 현대적 의미가 풍기는 것 같다"며 "역사 문화재의 인용을 통해 김혜경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조국의 역사적 긍지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내포돼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국 대사관 소속 한국문화원 미술전문위원으로 10년 넘게 근무했고 아자브 미술관의 학예연구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는 김혜경씨(44)는 일본 생활 20년을 넘긴 신한국인이다.

그동안 그녀는 한국의 문화 예술을 일본땅에 알리는 최전방에 서서 10여건이 넘는 대형 전시이벤트를 기획겵斂徨?온 첨병이다.

가장 최근의 사업으로는 98년 김대퉁령 방일 기념 국립국악원 일본 순회공연 '태고의 울림 자연의 소리'라는 행사를 기획했다.

또한 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 기념특별전인 '조선시대 남여공간'(95)과 한국문화원 겔러리에서 열린 '조선인의 상상력--민화병풍전'(94)은 특히 많은 호평을 받았다그밖에 한일문화교류 페스티발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의 색과 형'(92), '아시안 아트로드'기획전(91) 등 기획 주관하며 일본에서의 한국문화 알리기에 노력해 왔다. 또한 한국문화원에서 출간하는 정기간행물 한국문화의 편집에도 종사하고 있다.

그녀는 이같은 행사 진행을 맡으면서도 1986년 도쿄 갤러리 미야사카에서의 일본에서의 자신의 첫 개인전을 시작했다.

지난 21일 개막돼 오는 4월21일까지 계속될 '탄력과 잔해물'이라는 그녀의 개인전을 포함하면 지금까지 총 15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10여차례의 그룹전에도 참가했다. 현재 열리고 있는 전시는 도쿄 갤러리 키마이라 기획전으로 열리고 있다. 그동안 그녀는 미술화랑의 집산지인 도쿄 긴자(銀座)에서도 수차례 전시회를 가진 바 있다.

한편 그녀는 95년 도쿄 츠다(津田)홀에서 '황병기 가야금 리사이틀'의 무대미술을 시작으로 뉴욕 카네기홀에서의 '이승희 소프라노 리사이틀'의 무대미술도 맡았다.

무대미술에 있어서 그녀는 결코 밝은 과정만을 겪지는 않았다.이미 재판이 진행중인 저작권 침해 사건과 얽혀있다. 자신의 작품을 일본의 유명한 연극 단체가 허락없이 무단히 사용하자 그녀는 이국땅에서 외로운 법적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녀는 삶이 어려울 때면 언제나 바닷가 고향 언덕을 회상한다고 한다. 그녀의 고향은 경북 울진군 원남면이다. 바다가 보이는 그곳에서 중학교를 다닌뒤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도일, 일본 와코(和光)대학 예술학과를 졸업했다.

다마(多摩)미술대학원에서 미술디자인 석사과정을 마치고 와세다(早稻田)대학 대학원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당시 그녀는 아시아 지역을 두루 여행하면서 토착의 신화나 삶과 죽음, 그리고 재생의 심벌을 찾아다녔다. 그녀는 인도를 방문, 캘커타에 있는 마더 테레사 수녀원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처음으로 죽음의 실체를 어렴풋이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삶과 부활을 그녀의 작품 테마로 정하게 된다.

90년 가을 그녀는 부친의 상여와 함께 산을 올라가 무덤을 만들고 저무는 석양을 보며 인도에서 경험한 '죽음을 기다리는 집'에서의 체험을 기억한다.

그뒤 그녀의 작품들속에 자주 나타나는 접는 병풍과 십이지신상의 재현은 탁본을 근거로 요철 바탕에 금박을 듬뿍 칠한 배경위에 사람크기의 등신상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들은 아시아 문화속에서 한국문화의 뿌리를 찾는 끊임없는 탐구로 부터 찾아냈다고 작가는 말한다. "나는 한국의 전통적인 형상들을 도입함으로써 그 공간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생명력을 감지케하는 원천으로 삼도록 하려는 발상에 바탕을 두고 있어요"

그녀는 20여년이 넘는 기간의 작가로서의 길과 학문의 길, 그리고 한국의 전통문화를 일본에 소개하는 일 등 많은 고개를 넘어왔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두군데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97년 그녀는 학문에 대한 끝없는 탐구로 결실을 보게된다. 국립동경예술대학 대학원에서 미술환경디자인 전공으로 예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이다. 그녀의 저서로는 '미술관이란 무엇인가' 등이 있으며 수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88년 일본예술작가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해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이 능히 길을 넓히는 것이지 길이 사람을 넓히는 것은 아니다"라고. -朴淳國(편집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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