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건물에도 실명제를

입력 2000-03-28 14:10:00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의 현관 회전문을 들어서면서 보게 되는 황동 바닥판에는 이 건물의 설계자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의 이름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워낙 이름 새기기를 좋아하는 미국인들이라 그런가?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레스토랑 '올드 앤 뉴'에 들어서면 카운터 위에 건축가의 작품집이 놓여 있다. 종업원 아가씨는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에서 일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올림픽과 동시에 세계엑스포가 개최되었을 때 아주 인기가 좋았던 일본관의 진입로에는 다양한 계층의 일본인들의 사진을 실제 크기로 나열하여 가벽을 만들었는데 그 마지막 자리의 건물 입구에는 건축가 안도의 팔짱 낀 모습이 서 있었다.

마치 자신의 설계가 어떠냐고 묻는 듯이. 작가들이 자신이 만든 작품에 이름을 쓰듯이 이제는 우리 주변의 웬만한 디자인상품에서 디자이너 사인이나 이름 이니셜이 새겨진 것을 보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것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긍지의 표현이자 책임을 지겠다는 뜻일 것이다.

아름다운 패션 도시 대구를 만드는데는 너와 나가 따로 없지만 그중에서도 건물을 설계하는 건축가들의 역할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중요하다. 건축을 하나의 작품 혹은 디자인된 그 무엇으로 인정한다면 회화나 조각처럼 건축가의 이름을 쓰면 어떨까?

로마시대에 건축십서라는 율법중에는 건축가의 책임에 대한 많은 부분이 적혀 있으며, 훌륭한 건축가는 곧 예술가였다. 미켈란젤로·브라만테 그리고 브르넬스키 등등.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새로운 시대에 건축가들은 환경창조자로서 예술가가 되어보자.

그리고 자신의 작품에 이름을 쓰자. 이제 건축물은 더 이상 소수의 소유물이 아니다. 도시라는 거대한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이고 하나의 조각작품이다.

건축주·건축가·시공회사 모두를 투명하게 알 수 있는 건축물의 실명제를 시행해보자. 건축과 관계되는 어떤 불미스런 사고 앞에서 더이상의 책임전가나 떠넘기기식 행정에는 우리 모두 식상하지 않는가.

대구대 교수·건설축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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