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별 접근-어지럼증

입력 2000-03-28 14:15:00

얼마전 감기에 걸렸던 30대 회사원 박씨. 약국에서 사 먹은 약 덕분에 감기는 수월하게 넘겼다. 그런데 갑자기 주위가 빙글빙글 도는듯 어지럽고 구역질이 왔다. 빈혈이 생긴 줄 알고 조혈제를 사 먹었지만 좋아지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뜻밖에도 내이(內耳)에 있는 전정신경이 잘못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어지러우면 빈혈?

흔히 사람들은 어지러우면 빈혈 때문이라 생각한다. 빈혈은 철분이 부족할 때 생기기 쉬운 병. 하지만 육류 섭취량이 많은 요즘 빈혈때문에 어지러운 사람은 거의 없다. 어지럼증은 오히려 귀 이상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귀의 주된 역할은 물론 듣는 일을 하는 것. 그렇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그 못잖게 중요한 임무도 맡고 있다. 바로 '균형을 잡아주는 일'. 이 기능은 귓속의 전정기관이 담당한다. 내이에 있는 세반고리관, 뇌의 한부분인 뇌간에 있는 전정핵, 그리고 이 두 기관을 연결하는 전정신경을 전정기관이라 묶어 부른다. 여기에 이상이 생기면 어지럼증과 구토증 등이 나타난다. 이것이 진성 어지럼증, 즉 진짜 어지럼증이다.

◎진짜 어지럼증

어지럼증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누울 때나 누워서 고개를 돌릴 때 주위가 빙글빙글 돌면서 구토를 하는 것이다. 어지럼증은 20초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지만, 같은 자세를 취하면 다시 어지러운 것이 특징이다. 많은 사람들이 중풍이 아닌가 불안감을 갖는 이 병의 이름은 '양성 돌발성 체위성 어지럼증'. 귓속 세반고리관 안에 생긴 아주 작은 돌조각이 원인이다.

이 돌조각이 중력의 영향을 받아 양쪽 세반고리관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이 때문에 심한 어지럼증과 구토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약물치료는 일시적 효과는 있지만 재발을 잘해 특수 재활치료로 돌조각을 세반고리관 밖으로 빼내야 한다.

감기를 앓고 난 다음 갑자기 빙글빙글 도는듯 어지러워 움직이기 어렵고 속이 매스꺼워 먹을 수 없을 때는 '전정신경염'일 가능성이 높다. 어지럼증이 여러 날 지속되지만 귓속에서 소리가 나는 이명이나 청력장애는 없다. 감기 바이러스가 원인일 가능성이 많다. 수액을 넣거나 전정억제제 등으로 치료한다. 가급적 2∼3일 뒤에 재활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흔치 않지만 귓속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고 청력이 떨어지며 구토 등을 동반하는 어지럼증도 있다. 20~50세 사이에 잘 발생하는 '메니에르 질환'. 내림프액이 필요 이상으로 증가해 생긴다. 짠 음식을 금하고 이뇨제를 사용하면 증상이 좋아지지만, 재발하는 것이 특징이다.

◎뇌졸중과 어지럼증

나이가 많고 평소 고혈압·당뇨가 있는 사람이 갑자기 어지러워 비틀거리면, 뇌간으로 가는 혈관이 좁아졌다는 즉 뇌졸중이 오고 있다는 신호이다. 뇌간에 있는 전정신경핵에 영양과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어지러운 것이다. 물체가 두개로 보이거나 얼굴에 저린 느낌 등 각종 신경증상이 함께 나타난다. 방치하면 뇌간경색으로 진행해 혼수상태가 되거나 사망할 수도 있다.

◎가짜 어지럼증도 있다.

앞이 캄캄해지면서 아찔하게 어지럽거나, 붕 떠 있는 느낌이 드는 어지럼증이 있다. 심하면 실신한다. 손발이 저리거나 집중력이 떨어지고 긴장성 두통 등을 동반한다. 전정계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스트레스·과호흡·부정맥 등이 원인이다. 이런 것을 비(非)전정계 또는 가짜 어지럼증이라 부른다. 신경안정제 등으로 치료한다.

글 이종균기자, 도움말 오희종 의무원장(성심파로스병원 뇌신경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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