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잘 그린 산수화같다. 정원같은 산림. 수풀 어디에서나 결벽증마냥 정제미가 빼곡하다.
80, 90세 나이에도 곱게 머리를 빗겨 다담은 향나무. 돌틈 사이 여지없이 숨겨 심어 둔 연산홍, 난, 쑥갓. 산에서 난 돌로 둔덕을 쌓아 돌려 내린 포석정을 연상케 하는 수로….
팔공산 장군바위를 바로 보며 산 기슭에 자리한 2만여평의 대한농원. 여기선 나무가지를 보듬는 따스한 봄 햇살조차 마치 불러들인 듯한 착각이 인다.
이 곳 배만현 대표. 이같은 '조화'를 총 기획한 연출가이다.
"어디 한 군데 손 안간 곳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장갑을 끼고 해도 손이 엉망이지요"
그러면서 벗어 보인 손이 나무껍질같다. 나무가 좋아 마침내는 나무를 닮을 참인가.
"나무사랑은 어머니 때문이에요. 어릴 때 집마당에 어머니는 앵두·창포 등을 키웠고 겨울이 되면 선인장을 심었어요. 막내여서 이런 일을 자주 거들곤 했는데 꽃 피우고 열매 맺으면 깡총 깡총 뛸 정도로 좋았어요"
생명 키우는 보람을 그 무렵부터 서서히 몸으로 익힌 셈.
그 길로 그는 늘상 가슴앓이에 시달려야만 했다. 어머니마냥 나무와 풀들을 키우며 살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이 늘 뒤따라 오고 있었기 때문.
포목점을 하다 대한섬유란 간판으로 섬유수출업으로 돌아선 그는 칠곡 공장부지가 택지로 수용되면서 받은 10억원 안팎의 보상금으로 당시 기도원이던 이 곳을 얻어 92년에야 드디어 오랜 소망을 이뤄낼 수 있었다.
오자마자 일대 작업이 시작됐다. 아카시아를 뽑아내고 가죽·앵두·잣·매실 등 향토수종으로 바꾸는 역사를 시나브로 일궈냈다. 또 치자·때죽나무·비목·꿀밤·생강나무도 곁들였다. 동해바닷가로 가서 그 곳 해국을 구해다 1천그루 남짓 심기도 했다.
농원을 사들이기 전에도 나무를 사랑하는 그의 '끼'는 곳곳에서 드러났다. 고령 쌍림 농공공단으로 공장을 옮긴 후 3천평의 터에다 나무를 심은 뒤 다른 곳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잘 가꾸어 공단내 조경시설이 가장 잘 된 회사로 꼽혀 환경대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그는 지금 농원 가꾸는 일 외에는 아예 작파하다시피 했다. 직원들이 아예 '나오지 말라'고도 한단다. 일보다는 나무 돌보기에 더 빠져 시시콜콜한 '잔소리'가 업무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며 출근을 만류하기 때문이라며 웃는다.
농원을 가꾸기만 할 뿐 산술적 계산은 제대로 해보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연히 농원내 나무와 풀 등의 재산 가치를 평가하는 데 익숙치 않았다.
"이 곳에 올 당시 1 정도가 존재했다면 지금껏 그 100배 정도 정성을 기울였을 것"이라는 말로 속내의 뿌듯함을 대신할 뿐.
그는 지금도 회사에서 나오는 월급의 대다수를 이 곳에다 묻고 있다. 자기의 아름다운 산림을 위해서는, 또 자랑할 만큼 가꾸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놓아도 하나 아까울 것 없다는 태도다.
자식같은 나무, 나무같은 자식.
그는 올초 첫 딸을 시집보내면서는 1천500여 청첩장에다 채송화·봉선화·분꽃 등의 토종 꽃씨를 동봉, 잔잔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봉선화는 우리 나이 사람들에게 어릴 적 물들이던 추억이 다 있고, 오전에 한껏 오므리고 있다 밤에 피어 진한 향기를 풍기는 분꽃에 대한 기억도 갖고 있어요. 씨 뿌려 키우며 그런 추억들을 떠 올리면서 생명에 대한 또 다른 감회에 젖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현실에 찌푸러진 가까운 이들에게 '생명에 대한 외경심의 경종'을 울리고자 했던 것일까.
그림같이 가꾼 산림 아닌 정원이 사람들의 입을 타면서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초청 강의를 하는 강사 노릇도 하고 있다. 덩달아 그의 농원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묵묵히 사람에게 시혜를 베푸는 나무를 닮아서일까. 그는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농원을 열어 젖히고 있다. 이 날도 지금은 사무실로 활용하고 있는 기도원 강당에선 소음탓에 마땅한 마당을 얻기 힘든 지역 불교계 사물놀이 패들이 거침없이 신명을 올리고 있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리 제공에 인색함이 없다. 그 뿐이랴. 그는 방문객들에게 직접 딴 매실주 등 술 한잔 인심도 함께 나누는 넉넉함을 갖고 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무도 사람의 발자욱 소리를 듣고 큽니다"
유난스레 부지런한 그의 나무 사랑법이 오랫토록 귓전을 맴돈다.
裵洪珞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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