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교실/새바람 분다(4)대중금속공고 가방 없는 날

입력 2000-03-27 14:11:00

22일 아침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대중금속공고. 학생들이 가방도 들지 않은 채 줄지어 등교하고 있었다. 매주 수요일은 새 학기부터 시작된 '가방 없는 날'

교실로 들어간 학생들은 1교시 학급활동을 마친 후 각자 소속한 클럽으로 달려갔다. 볼링, 수영, 바둑, 테니스 등 교내 클럽은 모두 16개. 금속공고 답게 금속기계, 세라믹 등과 관련된 클럽도 있어 이채로웠다.

클럽활동을 위해 학교를 빠져나가는 행렬과 학교 곳곳으로 학생들이 이동하느라 부산한 것도 잠시. 각자의 클럽에서 신나게 하루를 보낸 학생들은 오후 3시를 전후해 학교를 떠났다.

지난 15일은 학교가 온통 시끄러웠다. 1학년 체육활동. 1만평의 운동장에서 체육대회가 벌어졌다. 2인3각, 교내 마라톤, 퀴즈놀이 출발 동서남북, 학급대항 릴레이 등이 하루 종일 계속됐다. 학생들은 "운동회철도 아닌데 입학하자마자 웬 체육대회냐"고 의아해 하면서도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2학년은 학년활동을 벌였다. 5개 학급 가운데 2개는 대구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을 둘러본 후 도자기 만들기, 탁본, 투호 등을 직접 해 보며 신기함과 재미에 빠졌다. 2개 학급은 냉천 자연랜드에서 하루를 보냈고 나머지 1개 학급은 학교에서부터 신천 좌안길을 따라 앞산 심신수련장까지 걸어서 다녀왔다.

봉사활동을 벌인 3학년은 가장 돋보였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가창 일대 독거노인들과의 결연활동. 행정기관의 협조를 받아 파악한 인근 독거노인은 모두 19명. 노인 1명마다 학년별로 2명씩 결연을 맺은 뒤 번갈아가며 매주 수요일 방문, 하루를 보낸다.

이날 방문 차례인 3학년들은 손에손에 학교에서 마련해준 밑반찬 등을 들고 노인들을 찾았다. 생활상태나 필요한 것 등은 이미 파악돼 있어 준비하기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식사나 목욕을 도와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보낸 하루는 학생들에게나 노인들에게나 쉽게 잊지 못할 기억이 됐다.

학교측은 앞으로 인근 신일양로원, 사랑의 집, 소년소녀가장 등과 결연을 확대해 같은 방식으로 봉사활동을 펼칠 계획. 나머지 학생들은 애망원, 사랑의 집 등을 찾아 도와주거나 학교 내, 신천 등지에서 청소와 환경정비 등으로 하루를 보냈다. 앞으로 인근 농민들의 농사일을 거들거나 골목청소, 불법 부착물 제거 등 종류에 관계없이 주위에서 필요로 하는 활동을 해나갈 계획이다.

학생들 가운데 모든 활동에서 빠져 자신의 특기에 골몰하는 경우도 있다. 사물놀이부 학생 18명과 연극부 25명은 수요일 하루 동안 사물놀이와 연극으로 하루를 꼬박 보낸다. 이른바 개성신장 활동이다.

대중금속공고의 '가방 없는 날' 프로그램은 이처럼 체육활동, 학년활동, 봉사활동, 클럽활동, 개성신장활동 등 5개로 나눠 학년에 따라 주단위로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학생들에게 학교에 꼭 가고 싶은 날로 만들기 위한 학교측의 의도다.

시행 한 달도 안 돼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경우 3월 결석누계가 299명이었으나 올해는 25일까지 100명도 되지 않는다. 좀처럼 보기 드문 학년 전체 결석없는 날도 나왔다. 김중기 학생부장은 "실업계 고교에서는 학생들의 지각, 결석 줄이는 것이 최대 현안"이라면서 "가방 없는 날 프로그램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자평했다.

대중금속공고의 올해 운영특징 가운데 하나는 1학년 전원 기숙사 입사. 과거 달성군이 대구에 편입되기 전에는 경북지역 학생들이 대거 입학해 기숙사가 붐볐으나 대구 학생들을 모집하면서 입사가 크게 줄었다. 700명 수용규모에 지난해 경우 50명선에 그쳤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붙이고 중도탈락하는 숫자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학교측은 신입생 전원입사를 추진했다. 학부모 의견을 받은 결과 거의 전원이 입사에 동의했다. 기숙사는 걸어서 학교까지 5분도 안 되는 거리. 개학 이후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이 매일 밤늦게까지 기숙사를 지키며 학생지도에 열을 쏟았다.

기숙사 내에 헬스장과 당구대, 컴퓨터 DDR을 설치하는 한편 방마다 대형 컬러TV를 들이는 등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기숙사 주변에 벚꽃이 만개하는 다음달 중순 쯤에는 학부모, 친지들을 초청해 공개 행사도 벌일 예정이다. 1학년들의 학교생활이 안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 더불어 2, 3학년들의 분위기도 좋아졌다.

2학년 한 학생은 "수요일이 즐거운 날이 돼 1주일이 빨리 가는 느낌"이라며 "교내 조경도 달라지고 1학년들이 활기를 띠면서 친구들 사이에 잘 해보자는 얘기가 자주 나온다"고 말했다.

학교측이 다르게 준비하고 있는 것은 학교 전문화. 학생들에게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높여주는 것이 학교생활에 열의를 갖게 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생각에서다우선 교내에 생산공장을 만들어 지역기업들에게 금속관련 제품들을 싼 값에 공급하면서 학생들에게는 실습효과를 극대화할 예정. 아울러 교내에 금속관련 연구소를 건립, 지역 업체들과 연계한 연구를 계속하면서 학생들에게도 전문화의 길을 넓혀준다는 야심찬 계획도 추진중이다.

이렇게 되면 대학 못지 않은 인력과 구조, 기능을 갖출 수 있어 기업들이 앞다퉈 인력채용을 요청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학교측은 또 이 성과를 바탕으로 내년에는 금속분야를 산업공예과, 소재기술과, 전자재료과 등 3개 과로 개편해 남녀공학으로 변신할 방침이다.

金在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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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근 대중금속공고 교장

"지각, 결석이 사라지면 머리와 신발 등을 완전히 자유화해 줄 생각입니다. 죄는 만큼 풀어줘야 의도대로 움직여주는게 학생들이지요"

실업계고 공통의 고민거리인 지각, 결석 문제에 대한 대중금속공고 이성근 교장의 생각은 철저한 보상제였다. '가방 없는 날'을 만들어 어느 정도 성과가 있지만 아직 일반계 고교에 비하면 부족하므로 "프로그램 개발, 재정지원 등을 확대해 학생들의 참여열기를 더욱 높여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봉사활동에 대해서도 이 교장은 "도·농 경계지역에 있는 학교니만큼 청소나 불우시설 방문 등 일반적인 내용에 매달리지 않고 다양화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농번기가 되면 논밭에 학생들을 보내 농민들을 돕게 하고 일손이 모자라는 공장이 있으면 물건 옮기는 것부터 도울 수 있도록 한다는 것. 특히 결연사업은 계속 확대해 학생들이 어려운 이웃들을 진심으로 만나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했다.

기숙사 입사와 관련해 "대구지역 학부모들이 쉽게 동의할까 걱정했는데 예상과 달리 거의 전원이 입사를 희망해 놀랐다"면서 "수요일에는 일찍 집에 보내는데 주말 말고 굳이 또 보낼 필요가 있느냐는 학부모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성교육 외에 금속분야 실업계 고교로서 특화시켜 나가는 것도 학생들의 변화에 직결된다고 보고 재단과 협의,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단순한 견학, 실습 중심의 현장교육 방식도 바꿔 지역 기업들과 일대일로 협의, 필요로 하는 인력을 선정해 1학년 견학, 2학년 실습강화, 3학년 취업연결교육 구조로 바꿔나간다는 것. 이 교장은 또 "커리큘럼 조정, 교내 생산공장 건립 등을 통해 내실있는 실업교육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金在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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