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아트 선재미술관 느림전

입력 2000-03-24 14:05:00

2000년 봄 이른 아침. 출근길 차량들이 과속 경쟁을 하듯 씽씽 달리고 깔끔하게 양복입은 회사원들이 종종걸음치고 있다. 수백년전 조선시대. 선비들이 느긋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부지런한 농부들도 노랫가락을 뽑으며 한가롭게(?) 일을 한다. 빨라지기만 하는 생활속도 속에서 우리는 느림의 미학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24일부터 6월18일까지 경주 아트선재미술관(0561-745-7075)에서 열리는 젊은 현대미술가 7인의 '느림전'은 근대화 과정에서 단순히 '빠름'으로만 변질돼버린 속도의 개념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김수자 김영진 박홍천 배병우 육근병 이 불 최정화씨 등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작가들이다.

김수자는 조각 천들을 모아 바느질을 하고 보따리를 만들던 작업에서 나아가 이번에는 그 보따리들을 트럭에 싣고 산보를 떠나는 작업을 보여준다. 김영진은 액체속을 유영하는 텍스트들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의 덧없음, 혹은 의미를 이야기하고 박홍천은 느리게 움직이거나 정지해있는 사물들만이 남게 되는 사진작업을 통해 '느림'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배병우 역시 소나무 사진으로 한민족의 역사성과 작가의 일상을 전달한다.

육근병은 새벽이 밝아오는 실제 시간을 비디오에 담았으며 이 불은 사이보그의 이미지를 통해 테크놀로지의 빠른 발전과 그 속에서의 여성, 혹은 우리 사회에 대한 고정적 시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최정화도 로봇과 모형 경찰관 소재의 작품을 통해 빠르기만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 비판적 발언을 하고 있다.

작가들은 단순히 느린 것이 아름답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빠르게만 진행돼 온 서구화가 '유유자적'과 '소요' '산보'를 잃게 만들었으며, 각 개인에 대해서도 일관된 빠르기를 강요하는 현실을 서글프게 여기고 있다.

金知奭기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