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美협상 '압력용 지렛대'

입력 2000-03-24 00:00:00

정부는 북한이 23일 오후 조선인민군 해군사령부 명의로 '5개섬 통항질서'를 공포하자 향후 남북관계 전반에 미칠 파장 등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가 북방한계선(NLL)과 관련한 북한의 주장에 대해 과거와 달리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은 4·13 총선을 앞두고 정국에 미칠 파장과 향후 남북관계에 대한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날 오후 북한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5개섬 통항질서를 일방적으로 발표한 직후 박재규 통일부 장관 주재로 정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북한의 5개섬 통항질서 선언에 따른 북한의 의도를 분석하는 한편 향후 대책을 심도있게 논의함으로써 그같은 분위기를 반영했다.

또 군당국도 작전 관계관 회의를 긴급 소집해 북한의 저의를 파악하는 등 유사시 군사적 측면에서 대응방안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특히 관계당국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 등 남측이 화해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이같이 강경한 태도로 나선 것은 남한의 총선정국을 적극 활용하자는 의도로 풀이했다.

또한 북한이 지난해 말 이후 서해 NLL 해상에서 함포사격 및 고속정을 동원한 기동훈련을 강화한 것도 이런 강경 선언을 준비한 수순이라는 것이 군의 분석이다.북한은 지난해 6월 15일 서해교전 이후 육·해·공군의 훈련을 크게 강화한 가운데 '1년내 보복의지'를 거듭 다져왔다. 지난달 28일 북한은 지난해 6월 서해교전이 있었던 해역에서 남한 군당국이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남한 함정 등의 동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군 당국은 우리측 함선이 북방한계선을 넘나들었다는 북한의 주장을 '사실무근'으로 일축했지만 북방한계선을 월선했다는 북측 주장은 지난해 6월 서해교전 이후 처음 나온 것이다.

이와 함께 북한의 이번 5개섬 통항질서 발표는 현재 진행중인 북·미협상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확보하기 위한 고도의 압박 전술이라는 분석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이와관련, "북한의 이번 선언은 남한보다는 미국을 겨냥한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하고 "특히 북·미 협상에서 미국에 대한 압력용일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이밖에 북한이 다가오는 꽃게잡이 철을 맞아 남한측으로부터 어장확보를 노려보자는 측면도 강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여하간 북한의 이번 서해 5개섬 통항 질서를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은 현재 우리측 관할하에 있는 백령도 등 5개섬과 NLL 등을 둘러싼 관할권 문제를 국제사회에 다시 부각시키는 한편 4·13총선 정국에 영향력을 끼치고 대미협상에서 협상의 지렛대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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