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입논술-39차 문제

입력 2000-03-17 14:29:00

문제:지식의 일차적인 목적은 그 지식의 주체인 인간 자신을 포함하여 세계를 포괄적으로 해명하는 데에 있다. 과학은 이러한 지식의 목적에 중심적 기여를 해 오면서 지속적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 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과학적 설명' 에 의해 이미 대체되었거나 아직 해명되지 않은 영역을 '신화적 설명' 의 영역이라고 부른다면, 과학의 역사는 신화적 설명을 과학적 설명으로 대체해 온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아래의 두 글을 바탕으로 신화적 설명과 과학적 설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라. (단, 반드시 자료 글에 제시되지 않은 사례를 활용할 것)

(가) 과학은 인간과 자연, 더 넓게는 우주의 제반 현상을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과학이 모든 현상에 대해 원리적 설명을 해 줄 수 없다.

고대 그리스의 이카로스 신화는 이런 문제에 대해 우리에게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카로스의 아버지인 다이달로스는 아테네 출신의 명장(名匠)이다. 그는 지혜와 재주가 출중했다. 그가 만든 조각품들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매어 두지 않으면 달아나 버렸다. 그런데 다이달로스는 크레타의 미노스 왕가에서 왕실 고문 기술자로 일하던 중, 왕의 노여움을 사 아들과 함께 자신이 만든 미궁(迷宮)에 갇히고 만다. 그러나 미궁 속에서 다이달로스는 깃털로 만든 날개를 밀랍으로 몸에 달고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공중으로 달아났다. 다이달로스는 이탈리아 반도 나폴리 근처에 내려 날개를 아폴론 신에게 헌납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아들 이카로스의 경우는 달랐다. 아버지가 너무 높이 올라가 태양 가까이 가지 말 것을 몇 차례고 되풀이해서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중을 난다는 희열에 사로잡힌 이카로스는 태양 가까이까지 올라갔다가 그만 날개의 밀랍이 녹아 바다 속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이카로스의 초월적 희구는 인간이 갖는 본성적 성향의 하나를 강하게 암시해 준다.

이러한 성향은 신화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춘추 전국 시대의 순자(荀子)는 당시에 성행하던 주술적 의식(儀式)에 대해 "일식(日蝕)이나 월식(月蝕)이 나타나면 그것을 막으려고 애쓰고, 가뭄이 길어지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며, 대사를 결정할 때 점을 치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바라는 일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다만 형식적 의례로서 그리하는 것이다. 군자는 그것을 의례적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백성들은 그것이 신통력이라도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라고 지적했다. 기원전 3세기에 이미 비과학적인 의식에 대한 인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술적 행위는 여전히 문화권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계속되고 있다.

이카로스적 충동은 첨단 과학 문명의 오늘날에도 여전히 표출되고 있다. 얼마전 캘리포니아에서 있었던 집단 자살 사건은 그 예의 하나이다. '천국의 문' 이라는 종교 집단의 신도 39명이 외계인과 접촉하기 위해 집단 자살을 했다. 그들은 '밥 헤일' 혜성이 지구에 근접하는 시기가 평소 꿈꾸어 오던 외계인과의 접촉에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신체란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이기 때문에 죽음은 새로운 삶을 위해 영혼을 다른 그릇으로 옮겨가는 행위에 불과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자살한 대부분의 신도들이 정상적인 직업인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전파하기 위해 최첨단 과학 매체인 인터넷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지도자였던 애플화이트를 비롯한 몇몇 신도들은 상당한 수준의 천문학적 지식을 가졌다고 한다.

(나) 근대의 출발과 함께 새롭게 수립된 과학적 탐구의 모형은 인간과 자연을 포함하여 세계의 기본 구조에 관한 체계적 해명을 그 목표로 삼는다. 몇 개의 포괄적 원리로 물리 세계의 모든 현상을 설명한 뉴턴 역학을 비롯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지속된 과학적 성취는 과학적 탐구가 궁극적으로 세계의 구조를 해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 주었다. 이러한 확신은 금세기에 이르러 '과학적'이라고 불리는 모든 지식에 객관적이고 단일한 구조가 있으며 그 구조를 따라 과학은 진보해 왔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과학관으로 집약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지진이나 화산 폭발 같은 자연 재해를 더 이상 신의 분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는 지각 구조의 변동이나 역학 관계로 그것을 설명한다. 그리고 신의 의도를 읽어 내려고 하기보다는 주어진 과학적 정보를 토대로 자연 재해를 예측하려고 한다. 달 착륙과 화성 탐사는 지구 밖의 영역을 현실적인 우리의 세계로 편입시켰을 뿐만 아니라 아직 도달하지 못한 무한한 우주 공간에 대한 신화적 설명을 포기하도록 요구한다.

흔히 사람들은 신화적 설명이 과학적 설명으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의 파괴나 대량 살상 무기의 개발과 같은 폐해를 들어 과학 자체의 문제점과 그 한계를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폐해는 과학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을 이용하는 인간의 문제일 따름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도 궁극적으로는 과학적 지식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결국 미지의 세계는 신화적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과학이 극복해야 할 영역일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화적 설명은 다만 '전과학적(前科學的)' 태도의 산물로서 언젠가는 과학적 설명에 의해 대체되어야 하며, 또 대체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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