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예술의 중심 뉴욕 한 한국인 화가를 주목하다

입력 2000-03-09 14:14:00

지난달 20일자 뉴욕 타임스 'ART'면은 '지구에서의 삶에 대한 회의론적인 견해'라는 제목으로 한 한국인 화가와 그의 작품세계를 8단 크기의 톱기사로 다루었다. 기사의 주인공은 대구출신 재미화가 변종곤(52)씨. 세계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짧은 비평이라도 게재되기를 바라는 이 신문이 유색인 예술가에 이만한 지면을 할애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 뉴욕 미술계는 '중대 사건'이라고 평가하며 변씨를 주시하고 있으며 다른 미술관으로부터의 전시 연장 요청, 작품 구매 전화가 쇄도하는 등 폭발적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변씨는 지난달 하순부터 이달 11일까지 뉴욕 허드슨 리버 갤러리 앤드 컨서베이터스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통해 세계 예술의 중심지 뉴욕으로부터 주목받는 예술가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 변씨는 바이올린, 첼로 등 현악기와 트렁크 등에 사진이미지 등을 접목,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그림들을 그린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변씨의 작품세계에 대해 "서로 다른 다양한 오브제(objet, 예술과는 관계없는 물건 등을 본래 용도에서 떼냄으로써 잠재된 욕망이나 환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들의 집합체, 또는 아쌍블라쥬(assemblage, 잡다한 물건을 조립해서 작품 제작)의 공통점을 지니며, 무엇보다도 그가 날카로운 풍자화가이며 깊이있고 신랄한 작품들로 문제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고 평했다. 특히 전통적인 동양화 양식으로 정교하게 묘사된 주름진 산맥의 풍경과 왼쪽 끝 부분에 그 출처가 미국임을 상징하는 'USN'이라는 약자가 새겨진 방독면을 쓰고 허리 위로부터 누드로 표현된 한 여성이 있는 작품 '굿모닝 코리아'에 대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정치적이며 한국의 분단 현실을 강렬하게 드러낸 작품"이라며 관심을 표했다.

또 첼로의 면에 우주를 유영하는 비행사들과 불상을 조합하여 그린 '바흐 소나타 G장조와 D장조' 등 실제의 현악기들을 그림의 재료로 한 작품들에 대해 "여성의 등을 바이올린이나 첼로로 변형시킨 미국 작가 만 레이의 작품 이미지를 연상시키나 변종곤 자신만의 분위기를 감지하게 하며 진지한 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흥미롭다"고 평했다.

변씨는 7일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뉴욕 타임스에 다섯 차례 비평기사가 실린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너무 크게 취급돼 나 자신도 놀라울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도 브루클린의 작업실에서 하루 10시간씩 작품 제작에 몰두하고 있으며 일주일에 하루는 좋아하는 실내악 연주회에 가고 매주 이틀간 오후에 서점을 찾고 있다. 정신을 공허하게 하는 문명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1년에 1~2개월은 아프리카, 인도 등지를 여행한다고.

중앙대와 계명대 대학원, 디 아트 스튜던트 리그 오브 뉴욕을 졸업, 20여년째 뉴욕에서 활동중인 변씨는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독특한 오브제와 극사실주의적 작품을 통해 물질만능풍조 등 사회현실을 비판하는 것이 작품의 특징. 다음달 5일부터 17일까지 대구, 뉴욕에서 선보였던 작품 등 35점의 작품을 전시할 계획이다. 金知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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