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데스크-"색안경 시즌"

입력 2000-03-07 00:00:00

시골의 한 노인이 도끼를 잃어버렸다. 이웃집 아이가 훔쳐 갔을 것이라는 의심을 했다. 그러자 그 아이를 유심히 살펴 볼 수록 얼굴 표정은 말할것도 없고 걸음걸이나 심지어 말소리 등 어느 구석 도끼를 훔쳐 간 것 같지 않은데라곤 한군데도 없어 보였다.

얼마후 노인은 도끼를 찾았다. 깊은 산 속에 나무하러 갔다가 잊고 가져오지 않은 것이다. 다음날 그 노인이 이웃집 아이를 보았을 때, 그 아이의 동작과 태도등을 유심히 살펴보니 이번에는 도끼를 훔칠 아이같은 구석이라고는 한군데도 없었다. '열자(列子)'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다.

한 사건의 정황을 판단 할 때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판단했기 때문에 생기는 엄청난 오류를 보여 주는 일화다. 이웃집 아이의 말과 행동에 관계없이 노인의 주관에 근거하여 억지 상상이 선입견으로 바뀌면서 색안경을 끼는 과정을 이렇게 명료하게 보여 주는 일화도 세상에는 드물것이다.

시중의 색안경이 동이 날 판이다. 정치권의 이전투구가 흡사 도끼를 잃은 노인의 심정으로 펼쳐진다. 영남이 마음의 고향이라고 얼추 설레발이를 치는 지는해 뜨는해도 맞장구를 치며 건방을 떤다.

터무니 없는 극처방도 나왔다. 영남정권 창출. 오죽 답답했으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영남이 무슨 정권창출 밸리라도 된다는 말인가.

아무리 실없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들 실없는 사람들이 북적댈 줄이야.

한 과학자가 사람의 몸뚱아리를 그야말로 과학적으로 분석해 그 구성요소를 밝힌 재미있는 결과가 있다. 물은 생각보다 많은 2말 정도. 지방질로는 세숫비누 7개를 만들 수 있다. 몸속의 연(鉛)으로는 9자루의 연필심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석회질로는 방 한 칸을 겨우 바를 수 있다. 인은 또 성냥개비 2천200개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철은 기껏 작은 쇠못 1개를 만드는 양이라는 것이다.

이렇게보면 사람이 무척 허망해 보인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 정신이 빠진 것이다.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인격이나 능력이 육신에 마치 옷을 입히듯 스며들면 지구를 들어 올릴만한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실현의 욕구가 성취될 때 삶의 보람과 생활의 충족을 느낀다. 인재에 대한 식별이 어려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바가 없다. 당 태종 이세민은 도독(都督)과 자사(刺史) 등 고관의 이름을 침실의 병풍 위에 써놓고 자나깨나 쳐다보며 우수한 인재를 식별하고 활용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특정고교 출신들이 노른자위를 싹쓸이 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렇지 않다고 성명을 내고. 이런 것은 여기에 금덩어리를 묻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는 어리석은 짓이다.

한 자도 짧을 때가 있고 한 마디도 길 때가 있는 법이다. 현명한 인재가 있어도 알지 못하고, 알아도 등용하지 못하고, 등용해도 신임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어떤 지역만을 골라 인재를 등용한다면 그 나라는 꼴이 말이 아니다.

자연히 연줄따라 권력과 이권이 강을 이루고 패거리 문화가 판을 치게된다. 패거리란 항상 상대를 작살내야 직성이 풀리도록 이미 길들여져 있는 상태다. 자칫 의리나 온정으로 패거리들은 치장을 한다. 그러나 속성은 버릴 수 없다. 제한된 자원을 독점하기 위해 연줄로 연줄로 얽어매여져 이것이 저잣거리의 의리의식으로 미화되기도 한다. 큰일 날 일들을 하고 있는 셈이다.

어떤 이는 한국인이 역사적 불행때문에 마음이 상하기 쉽고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도 이성적 구명보다는 정서적 반응으로 흐르기 쉽다고 했다. 선거하는 날이 다가 올수록 공감이 가는 말이다. 문제는 이런 감정을 더욱 부추기는 정치꾼들의 고단수를 많은 유권자들이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걸핏하면 유권자들의 심판 운운한다. 그래놓고는 선거때마다 새정치 운운하는 것은 항상 정치꾼들이 유권자들을 농락해온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TK를 놓고 공략이 한창이다. 도끼를 잃은 색안경낀 노인들이 모여들고 있다.정말이지 TK가 뭐길래?

金埰漢(북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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