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자동차 언제쯤 타 볼까

입력 2000-03-02 14:00:00

하늘을 나는 자동차와 인간의 힘만으로 나는 비행기 중 어느 것이 먼저 나왔을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반문할 지 모르지만 분명 이 둘은 역사 속에 등장한 바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행자동차가 인력비행기보다 먼저 발명됐다. 상업성이 없어 대중화되지 못했을 뿐이다. 비행자동차라고 해서 영화 '제5원소'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몰던 초고속 비행 택시를 상상해선 곤란하다. 비행자동차가 처음 등장한 때는 1940년대니까.

당시 비행자동차는 날개와 동체, 프로펠러를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착탈식 비행기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평소엔 차로 다니다가 장거리 여행을 할 때 차고에 보관돼 있는 날개와 프로펠러를 붙이면 비행기로 변신하는 것이다. 렌치를 이용해 조립하는 시간은 5분 정도. 비행기 앞부분만 자동차처럼 몰고 다니다 보니 교통경찰과의 실랑이도 종종 벌어졌다고 한다. 이들 비행자동차에 붙여진 이름은 '에어피비언(airphibian)'. 육지와 물 속 어디서나 살 수 있는 '앰피비언(amphibian:양서류)을 변형한 단어.

인력비행기는 이보다 약 40년 뒤진 1977년 처음 역사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인력비행기를 얘기하자면 '크레머상(賞)'을 빼놓을 수 없다. 크레머상은 1949년 영국의 기업가 헨리 크레머가 자신의 이름을 따 제정한 것. 당시 크레머는 수상 조건으로 인간의 힘만으로 나는 비행기로서 이륙한 뒤 서로 800m 떨어진 두 개의 탑을 8자 모양으로 돌아야 한다고 정했다. 얼핏 간단해 보이는 조건을 만족시키는데 28년이 걸렸다.

크레머상의 수상자는 공학자이자 비행가였던 미국인 폴 매크리디. 그는 동체 길이 9m에 날개길이는 29m나 되는 기괴한 모양의 인력비행기를 만들었다. '고사머 콘도르'로 이름붙여진 비행기의 무게는 겨우 32kg. '고사머(Gossamer)'는 '공중에 뜬 가느다란 거미줄'이란 뜻. 무게를 최소화하기 위해 알루니늄관을 피아노선으로 연결해 동체를 만들었다. 날개길이가 비정상적으로 길었던 이유는 최고속도가 15km에 불과했기 때문. 속도가 느리다보니 뜨는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글라이더 같은 큰 날개가 필수적이었다.

이후 미국의 과학자들은 첨단소재를 총동원해 지난 88년 혁신적인 인력비행기 '다이달로스'를 제작했다. 다이달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비운의 인물 이카루스의 아버지. 아들과 함께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몸에 달고 크레타섬에 있는 미노스왕의 미로를 탈출했다고 전해진다. 태양에 가까이 다가갔다가 밀랍이 녹아 추락해버린 아들과 달리 다이달로스는 크레타섬 북쪽 120㎞에 위치한 산토리니섬까지 날아갔다.

탄소섬유와 특수합성섬유인 케블라로 만든 다이달로스는 날개길이 34m에 무게 32kg급. 케블라는 강철보다 5배나 강하면서 유리섬유보다 가볍다. 다이달로스는 평균 시속 30㎞, 평균 고도 6m로 바다 위를 4시간 가량 날아 산토리니섬에 도착했다. 비록 소재는 다르지만 신화 속 이야기를 결국 20세기에 와서 실현시킨 셈이 됐다.

다시 비행자동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상업용 여객기가 발달한데다 당시만 해도 교통체증이 심각하지 않았던 까닭에 '에어피비언'은 그저 호기심 많은 공학도나 비행가들의 장난감 쯤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영화 '폴링 다운'에 등장하는 마이클 더글러스가 체증에 시달리다 못해 도로에 차를 팽개쳐 버리는 시대가 오다보니 텅 빈 하늘로 출퇴근하는 비행자동차가 새삼스레 부각되기 시작했다.

진짜 비행자동차가 등장한 것은 지난해 일명 'M400 스카이카(skycar)'이 발표되면서 시작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항공 회사 몰러 인터내셔널이 개발한 것. 창립자이자 엔지니어인 폴 몰러가 30여년 간의 연구 끝에 개발한 스카이카는 4명을 태우고 최고 시속 600km로 날 수 있다고. 연비는 ℓ당 8km 정도. 가솔린 3ℓ로 100km를 가는 이른바 '3ℓ 카'까지 등장하는 마당에 연비면에선 전혀 실속이 없는 차 일지 모른다.

스카이카는 일반 자동차에 사용되는 피스톤 엔진 대신 로터리 엔진을 도입했다. 엔진 연소실에서 피스톤이 왕복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삼각형 모양의 회전자(rotor)가 회전운동을 통해 동체 밑에 있는 회전날개를 돌리는 것. 회전속도는 분당 6천회 정도. 로터리 엔진 8개로 탑승석 밑에 붙은 4개의 회전날개를 돌려 약 1천kg 정도를 들어올리는 상승력을 얻게 된다. 일단 이륙하면 탑승석 뒷쪽의 프로펠러가 차체를 앞으로 밀어준다.

그러나 스카이카가 대중화하기까기 갈 길은 멀다. 우선 값이 너무 비싸다. 완전 수제품이기 때문에 대당 가격이 12억원 정도. 대량 생산이 이뤄져도 가격은 7천만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게다가 엄청난 소음와 안전 문제로 인해 도로 한 가운데서 이착륙을 하기엔 부적합하다. 몰러는 스카이카 전용 수직이착륙장이 주유소처럼 보편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집 앞에 비행자동차가 날아다니는 시대를 상상하기엔 시기상조인 것 같다.

金秀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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