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갈등 대화로 해결 가능"

입력 2000-02-29 14:07:00

'문명충돌론'을 제기해 주목을 끈 새뮤얼 헌팅턴에 따르면 세계사는 국가간의 대립과 이데올로기간의 대립을 마치고 이제 '문명'간 대립단계에 들어섰다. 문명은 미래의 갈등 단위라는 시각이다. 그는 종교를 구심점으로 세계 문명을 나눈다. 따라서 이슬람 세력과 유교문화권 국가들은 서구사회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설파한다. 과연 헌팅턴의 이론대로 문명의 충돌은 필연적인가?

이 이론의 반대입장에 선 독일의 하랄트 뮐러(프랑크푸르트대학 국제관계학 교수)는 21세기의 진정한 화두는 충돌이 아니라 공존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말로 번역돼 나온 저서 '문명의 공존'(푸른숲 펴냄)에서 뮐러교수는 헌팅턴의 이론을 본격적으로 비판하고 대화와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즉 뮐러의 반(反) 헌팅턴 구상을 담은 책이다.

먼저 헌팅턴 이론의 핵심을 살펴보자. 문명 충돌론은 앞으로의 세계 정치에서 문명과 문명의 충돌이 세계 평화에 가장 큰 위협이 되며, 문명에 바탕을 둔 국제질서만이 세계대전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어수단이라는 것이다. 중동의 이슬람과 동아시아의 유교를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장애물로 규정한 그는 타 문명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문명간의 분쟁과 갈등을 부추김으로써 인류 공존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다.

이러한 문명, 특히 종교를 중심으로한 그의 21세기 세계 예측은 그동안 많은 비판을 불러 일으켰다. 각국의 정치학자들은 헌팅턴의 이론을 '냉전이론의 변형' '백인 우월주의' '새로운 황화론(黃禍論)'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 문명 충돌론에 대한 대표적 반대론자인 뮐러교수는 헌팅턴이 주장한 '서구를 위협한다는 적대적인 문명'들의 존재가 실제로는 얼마나 설득력 없는 환상인지 밝힌다. '우리 대 너희'식의 이분법적 세계관, 적대적인 이미지들을 생산하고 수용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또 얼마나 유혹적인지 설명한다.

그러면 뮐러의 '문명 공존론'은 어떤 것인가. 비판-구상-분석-전망으로 나눠 고찰한 이 책에서 그는 이슬람은 결코 폭력적인 문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타 문명과 분쟁을 벌인 62개의 문명집단 가운데 21개 집단, 즉 1/3이 이슬람 국가이거나 이슬람 문명집단이다. 하지만 이슬람 문명의 경우 육로로 연결된 경계가 현격히 길기 때문에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는 육로 경계를 사이에 둔 국가들은 갈등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을뿐 결코 이슬람 문명이 폭력적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헌팅턴의 말대로 이슬람은 결코 '위험하게 끓고 있는 죽'이 아니라는 것이다.

뮐러교수는 중국이 많은 이슬람 국가들에게 재래식, 비재래식 무기를 제공하고 있지만 미국의 대 이슬람 국가 무기판매량이 그보다 10배가 넘는다는 사실을 헌팅턴이 침묵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결국 문명 충돌을 야기하는 일차적 장본인은 서구 사회이지 결코 이슬람이나 유교문화권이 아니라는 해석이다. 저자는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세계 정치지역을 서구, 아시아, 이슬람, 러시아와 그 주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등 5개 지역으로 나눠 경제.사회 상황과 국가간의 관계를 고찰하고 정치 발전의 동향을 진단해 문명 공존에 대해 전망한다. 이밖에 테러리즘, 환경 파괴, 대규모 인구이동 등 문명 공존을 방해하는 요소들과 그 영향을 조명해 공존의 길을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문명간의 전쟁이 아니라 대화만이 세계 공동체의 평화로운 미래를 보장해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낯선 것에 대응하는 적절한 처방은 '폐쇄'가 아니라 '개방'이라는 인식이다. '중국의 급부상' '일본주식회사' '이슬람 근본주의' 등은 주변적인 현상일뿐 진정한 문제는 서구 사회의 세계 인식과 태도에 달린 것이다. 문명의 충돌은 불가항력적인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이며 따라서 인간이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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