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대지가 보고 싶어 홀로 길을 떠났소/배로 건넌 현해탄 부산항구/아침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부산 부두에서 버스를 타고 해운대 바다를 보았다/여기가 아버지의 고향이라 생각하니/길가는 사람들 어쩐지 낯이 익네..."
재일동포 2세 가수 박영일(朴英一.50)씨는 자신이 작사.작곡한 대표곡 '청하(淸河)가는 길'을 통해 아버지의 고향인 경북 영일군 청하면을 처음으로 방문했을때의 감회를 이렇게 노래했다.
일본 TBS-TV 인기 뉴스프로 '데츠야 뉴스 23'의 엔딩 테마곡으로 처음 소개되면서 알려진 이 노래는 일약 유명해져 제37회 일본 레코드 대상, 앨범 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히트했다.
총 48절로 이뤄진 이 노래를 끝까지 부르려면 50분이 소요된다.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불우하게 죽은 부친의 고향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때까지 가수로서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앞으로 살아갈 길을 확신해 가는 서사시 같은 구성으로 돼 있다.
"...배낭을 등에 메고 손짓 발짓으로 길을 물어 버스를 갈아타고 겨우겨우 아버지가 태어난 경상북도 청하라는 곳을 찾았다/아득히 머나먼길 그끝에는 산이 있소/그 옛날 아버지가 걸었던 이 길/마음이 뜨거워지네/이제사 왔느냐며 고향이 팔 벌려 반겨주네/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리랑 고개를 나는 간다"
청하면에 도착해 면사무소에 달려가 호적부에 얹힌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뿌리를 찾은 마음이 들었고 아직도 남아있는 아버지의 작은 생가를 둘러보고 감격에 겨워한다.
"...마을에서 떨어진 강가 집 한 채/여기가 박씨의 집이었다 하네/아버지가 태어난 곳 하룻밤만이라도 홀로 있고 싶었소/마을에서 바라보니 펼쳐 있는 푸르른 바다/내이름이 영일인데 바다 또한 영일만이라네..."
허스키한 목소리는 박씨의 모습만큼이나 막걸리 냄새가 물씬난다. 그래서 한국 냄새가 짙게 배어 있는 이 노래는 한곡만으로 스테이지가 끝나는 경우도 있다.특히 한 재일동포의 개인적인 역사를 노래한 이 곡을 민족과 국적의 벽을 넘어 일본인의 심금을 울린다는 것이다. 육성과 기타 하나만 가지고 가슴저미는 노래를 부르는 그의 공연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일본에서 사용하는 그의 통명은 아라이 에이치(新井英一). 일제때 일본 구슈(九州) 츠쿠도요 탄광으로 끌려온 아버지 박재호(朴在浩)씨와 일본국적의 어머니 김문덕(金文德)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학교에서는 '조센징'이라 욕하는 아이들과 코피가 터지도록 싸우기도 하고 그는 갈수록 삐뚤어지며 불량배로 변해갔다. 그의 아버지는 병으로 처자식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나 버렸다.
혼자가 된 어머니는 당시 한국인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몇가지 안되는 직업인 폐품 수집상을 하며 어린 아이들을 길렀다. 어려서부터 박씨는 노래를 좋아했다. 장래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고 어머니는 그의 포부에 귀를 기울여 줬다.
"...제일 슬픈 일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어느날 갑자기 경찰이 어머니를 끌고간 채 일년동안 돌려보내질 않었네/전깃줄을 샀다는 이유로 장물취득죄로/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어머니가 형무소에서 출감하던 날 울분을 참지못해 소리치며 형무소 벽을 기어오르던 일을 목이 터져라 노래한다. 15세에 가출하여 전국 배회를 시작했다. 그의 길고 긴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와쿠니(岩國)지방 미군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면서 처음으로 재즈와 블루스를 접하게 됐다. 21세에 브라질을 거쳐 미국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록음악에도 심취했다.
접시닦이, 건물해체 노동일을 하면서도 그곳에서 국적이나 민족에 구애받지 않고 사는 생활에 난생 처음 깊은 숨을 쉬는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다고 한다.
가수를 꿈꾸며 다시 돌아온 그는 라이브 무대의 일거리를 찾아 도쿄의 나이트 클럽을 전전했다. 가는데 마다 거절 당하면서도 끝내 꿈을 버리지 않았다.
어느 날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으로 유명한 뉴스 게스트인 치구시 테츠야씨가 그의 공연을 보고 천재적인 음악성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뉴스 23'의 엔딩 테마곡으로 '청하로 가는 길'을 채택, 3개월 이상이나 전국으로 방송했다.
박영일씨의 최초 콘서트는 1995년 10월 도쿄 신주쿠 문화센터에서 있었다. 콘서트명은 '아리랑의 여행'이었다. 2천석이 넘는 객석은 일본의 유명인사들로 가득 찼다. 장장 50분에 걸쳐 완창된 이 노래는 통기타를 주축으로 징, 장고, 꽹과리, 북 등 사물놀이가 배경으로 연주되면서 분위기는 고조 됐다. 청중들은 노래에 완전히 빠져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박자에 맞추어 손장단을 치기도 했다고 한다.
일본의 언론들은 "자기의 뿌리는 한반도라고 외치고 한국인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려는 그에게 박수가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영일의 노래를 듣는 이들은 모두 울고 있었다"라고 공연평을 보도했다.
그는 이제 120곡이나 되는 노래와 10개의 앨범을 내고 20년의 가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올해도 연중 일본 전국의 공연계획 일정이 잡혀있다. 그는 고국무대의 공연을 위해 한국말로 완전히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때가 하루라도 빨리 오도록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많은 그의 팬들은 이제 펜클럽을 만들고 일본 야후를 통해 홈페이지(http://www.ne.jp/asahi/e-arai/office/)를 관리해주는 등 인기관리를 도와주고 있다.
朴淳國 사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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