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마구 샌다

입력 2000-02-11 00:00:00

전자부품 대리점을 하는 박모(39)씨는 지난 2일 '횡재'를 했다. 경영난을 겪던 중 브로커를 소개받아 단번에 3천만원을 대출받았기 때문.

십여차례 은행을 드나들어도 천만원을 빌리지 못했던 그는 브로커에게 간단한 서류 몇종을 건넨지 며칠후 신용보증기금에서 돈을 받을 수 있었다.

박씨는 "수수료 300만원을 지불했지만 대출조건이 '무보증 무담보에 연리 8%, 5년거치 상환'이어서 불만은 없다"며 "그렇게 '눈먼 돈'이 널려 있는데도 헛고생만 했다"고 말했다.

사실 박씨가 받은 자금은 벤처나 영세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자금. 신생 업체들은 수백만원이 아쉽지만 정작 이들에게 돌아가야할 공적 자금은 엉뚱한 곳으로 새고 있다.

금융브로커들은 간단한 대출 대행만으로 '고액의 대출 수수료'를 챙기고 있다.

그들은 대출 조건이 안되는 이들을 상대로 서류를 허위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지난해 브로커를 통해 두차례에 걸쳐 6천만원을 대출받은 김모(35)씨는 "브로커를 통해 동종업자 10여명이 무더기 대출을 받았는데 각자 필요한 액수에 따라 서류를 꾸며줬다"며 "대출을 받기 위해 사업자증명서를 만든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 2, 3달 정도의 시간은 걸리지만 무직자, 주부 등도 브로커를 통하면 '대출'을 받을수 있다. 소프트웨어 벤처회사를 운영하는 신모(38)씨는 정부기관에서 퇴직했다는 브로커로부터 정보통신부 정책자금 1억원을 타주겠다는 제의를 받은 경우.

신씨는 "수수료로 지원금의 15%를 요구해 고민 끝에 거절했다"며 "그후 10여차례 기술신용보증기금을 찾아간 끝에 겨우 돈을 빌렸던 것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브로커들은 대출을 알선해 주고 대출금의 10~20%를 받는데 지역에서만 은밀히 활동하는 이가 20~3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전문 브로커를 소개해준 뒤 사례비를 받는 '중계 브로커'까지 생겨났다.

신용보증기금 대구지점 관계자는 "정상 업체라면 대출을 받기 어렵지 않지만 브로커들이 정보나 행정력이 부족한 업체에게 접근해 대출을 미끼로 수수료를 챙기고 있다"며 "대출 건수가 많고 인력이 부족해 심사를 제대로 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李宰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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