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린 배 어디서 채우나요

입력 2000-02-02 15:56:00

"한 곳이 더 생겨도 부족할 지경인데 있던 곳 마저 없어지다니…"

1일 낮 12시 대구시 중구 달성동 무료급식소 '인성회의 집' 앞에는 여느 때처럼 점심식사를 해결하러 왔던 4명의 노인이 '오늘부터 문을 닫으니 다른 무료급식소를 이용하라'는 내용의 안내문을 읽으며 혀를 차고 있었다.

주민들의 이전요구로 10여년에 걸친 무료급식 봉사를 마치고 문을 닫은 첫 날 발걸음을 돌린 사람들은 60여명. 나이가 많거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폐쇄'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 집 아니면 밥을 굶는다"며 통사정하기도 했다.

그동안 인성회의 집을 이용했던 '배고픈 이웃'들의 숫자는 하루 평균 700여명.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크게 늘어났던 무료급식 이용자들은 주가가 1천포인트를 넘나든다며 경제활황을 외치는 요즘에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700여명의 인원을 수용했던 '인성회의 집'이 이 날부터 문을 닫으면서 부근 다른 무료급식소는 더 혼잡해지기 시작했다. 대구시 중구 교동 '요셉의 집'에는 이 날 340여명이 몰려 평소보다 50여명 가까이 늘어났다.

'요셉의 집' 김아오스딩(60)수녀는 "가장 많이 붐빌 때도 300명을 약간 웃돌았는데 오늘은 이보다 더 많았다"며 "배고픈 이웃은 여전히 많은데 이들을 도와줄 시설은 오히려 줄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인성회의 집' 김경수(65) 대표는 "집값 하락 등 이웃의 핀잔을 받으며 운영해왔지만 더이상 주민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며 "문을 닫은 줄도 모르고 계속 찾아올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인성회의 집'은 앞으로 식당, 시장 등에서 남는 음식물을 모아 각 복지시설에 전달하는 '푸드뱅크'역할을 하며 불우한 이웃들을 계속 도울 것이라고 김대표는 덧붙였다.

한편 우리복지시민연합은 2일 무료급식소 '인성회의 집' 폐쇄와 관련, 성명서를 발표하고 주민들의 이기주의에 밀려 노숙자, 실직자들의 보금자리가 없어지는 상황에서도 대구시는 팔짱만 끼고 있다며 인성회의 집 폐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즉각 대안을 마련하라고 주장했다. 또 대구에서 운영되고 있는 전체 무료급식소를 대상으로 이용자현황 등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사회복지관련시설이 혐오시설이 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책을 세우라고 촉구했다.

崔敬喆기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