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최창국-논설위원)

입력 2000-01-06 14:16:00

이름도 거창한 뉴 밀레니엄의 벽두에 2천640년전의 한 전쟁을 얘기하고자 한다. 중국 춘추시대의 다섯패자(春秋五覇)중 하나였던 송(宋)의 양공(襄公)이 밀려드는 남방의 강국, 초(楚)군과 홍수(泓水, 河南省)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병력이 많은 것을 믿은 초군이 송군의 면전에서 도하하기 시작했다. 재상이었던 목이(目夷)는 이를 다시없는 기회로 여겨 적의 허를 찌를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양공은 공격을 허락하지 않았다. 초군이 막 도하를 완료, 맞은편 둑에 당도했지만 진용을 채 갖추지 못했을 때, 목이는 상대가 대오를 정비하기 전에 공격할 것을 또 진언했지만 양공은 역시 불허했다. 마침내 초군이 대열을 갖추고 포진했을 때 양공은 비로소 공격을 명령했지만 강국의 대병력과 맞닥뜨린 송군은 문관(門官)으로 불리는 군주의 친위대까지 전멸할 정도로 완패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양공의 패전담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군자는 상처를 거듭하지 않고 이모(二毛)를 포로로 하지 않는다. 옛날에 싸움을 할 때는 조애(阻隘)로써 하지 않았다. 과인은 망국지여(亡國之餘)라 할지라도 열(列)을 이루지 않음에 고(鼓)를 치지 않는다'

상처를 거듭하지 않음은 부상자를 다시 상처입히지 않음이요, 이모란 흰털과 검은털을 말하니 머리가 희끗희끗한 초로의 병사를 포로로 잡지 않는다는 것. 조애로써 하지 않음은 골짜기나 하천속 등에 의지해 이기려 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망국지여'는 송나라가 은(殷)왕실의 후예들로 이뤄진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주변의 제후국들과 싸울 때는 더욱 당당하게 임해야 할 지체로서, 황차 상대가 전열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는데 어찌 공격명령을 내릴 쏘냐는 얘기다.

현재의 개념으로는 실로 황당무계한 이상주의로밖에 해석되지 않겠지만 새 천년의 틀짜기를 목전에 둔 우리의 여야정당으로선 홀시할 수 없는 정신적 가치가 이른바 이 송양지인(宋襄之仁)에 있다. 칼이 오가고 활이 날아들지 않는 총선싸움판이기에 양당의 게임 룰은 더욱 소중하다. 이모(二毛)를 포로로 하지 않는다는데 싸움을 시작도 하기 전에 이모(二毛)의 야당의원을 포로로 하겠다는 여당진영의 작전은 대통령의 새 천년 화합메시지가 있어도 아직 미결상태다. 여야 가릴 것 없이 DJ공격수는 무엇이며 이들을 악착같이 낙마시키기 위한 표적공천은 또 무엇인가. 골짜기나 하천속 등에 의지해 이기려 하지 않는다는데 막바지의 선거법 협상에서 여당은 굳이 상대를 자기편 골짜기로 끌고 가려한다. 정당명부식 1인2투표제의 결과는 초보 유권자라도 헤아릴 수 있는 것. 상대가 열(列)을 이루지 않음에 고(鼓)를 치지 않는다고 했는데 여야 모두는 벤처신당과 참신한 신인들이 열(列)은 고사하고 전투복도 챙겨 입기전에 지구당 폐지, 선거비용 실사 강화 등의 개혁안들을 아예 잊은 척 외면하고 있다.

엿가락처럼 활동시한을 늘였던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1인보스 중심의 비민주적 정당구조 조정, 고비용 정치구조 개선 등 정치개혁의 본질사항은 뒷전으로 미룬채 현역들의 이익과 직결된 선거제도만 놓고 제몫 챙기기에 골돌하다 지난해 말로 문을 닫아버렸다.

이만하면 개혁에 저항하는 기득권 세력의 상징이 현역 정치권이란 사실은 두말이 필요없다.

사회의 구석구석을 거쳐간 구조조정 바람이 정치권에만 아직도 일단 정지 상태에 있다. 정당의 구조조정 외면은 곧바로 정당의 자생력 상실, 정치력 부재로 이어져 온 나라가 휘둘린 사실을 지난해에 국민들은 진저리가 나도록 겪었다.

최근 집권당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이른바 '곱하기 제로론'을 주목한다.

김대중 정부의 외환위기 극복과 개혁의 성과 등, 집권 2년의 분야별 치적을 아무리 내세워도 정치분야가 0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곱하기만 하면 0이 된다는 얘기다국민회의가 됐든 신당이 됐든 이런 논의가 일각에서 뿐만 아니라 당전체에서 일기를 기다려 본다.

그런대로 평가받을만한 자기 확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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