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검찰정신'살린 '수사팀 반발'

입력 1999-12-17 00:00:00

'국민에게 거짓말을 하다가 검찰과 나라가 이 모양이 됐는데 여기서 무엇을 더 숨기겠느냐'. 이 말은 박주선씨의 재소환, 사법처리 의지를 굳힌 대검수사팀이 검찰수뇌부의 소환 연기종용에 강하게 반발한 배경을 한마디로 함축한 것이다.

보고서 유출을 수사중인 대검중수부가 18일 박주선 전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재소환, 사법처리하기로 방침을 굳힌 결정적인 국면전환은 바로 이종왕 수사기획관 등 수사실무팀의 이같은 강한 의지가 이끌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검찰수사팀은 우여곡절끝에 사직동팀장 등 실무자들로부터 박주선씨가 최초보고서도 김태정씨에게 건넸을뿐 아니라 내용 일부를 수정해 대통령에게 축소, 허위보고한 사실까지 밝혀냈다. 그런데도 수뇌진의 물증부족 타박에 수사팀은 청와대 법무관실 직원들로부터 박씨가 최초보고서 등을 받아보고는 곧바로 문서 자체를 파기까지 했었다는 진술에다 로비사건 전개과정에 두루 관여한 혐의까지 포착, 사법처리 의견을 수뇌부에 개진했으나 역시 '물증부족'으로 소환연기를 종용하자 이종왕 수사팀들이 발끈 반발한 것이다. 자칫 수사를 다 해놓고도 수뇌진의 지연전술에 말려 흐지부지쪽으로 빠질 것을 극히 우려한 나머지 소환방침과 공무상 비밀누설, 공용문서 은닉혐의까지 이틀이나 앞당겨 발표해 버렸다.

이 과정에서 이종왕수사기획관이 사의를 표명할 것이란 점이나 검찰수뇌부와의 회동에서 신승남대검차장이 총장의 재가를 받아 처리하라며 회의장을 박차고 뛰쳐나간 것 등은 박씨의 사법처리를 놓고 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검찰수뇌부가 과연 뭘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박씨의 관련의혹이 수사진에 의해 속속 밝혀지고 증거까지 있는 사안을 왜 그렇게 미적거리는지 도대체 그 저의를 알 수가 없다. 이 사건이 그냥 지나칠 성격인지, 그게 진정 정권에 도움이 되는건지 그렇게도 판단이 안되는지 답답하다. 만약 이게 그냥 지나치면 그 후유증은 일파만파로 커질건 말할것도 없고 박씨 한명을 끌어안으려다 검찰은 물론 정권에까지 엄청난 부담을 준다는 현실을 왜 모를까. 수사실무진의 의견이 백번 타당한 것이다.

잠시 고통이 있을진 모르지만 멀리보면 검찰을 살리는 길이고 정권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처방이다. 이점 검찰수뇌부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 이런 편견만을 갖고 어떻게 험난한 검찰을 이끌 수 있을건지 심한 회의를 갖지않을 수 없다. '정치검찰'의 오명을 벗을길은 수사검사들의 얘기처럼 더이상 검찰이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평범한 사실에 있음을 검찰수뇌부는 다시한번 새겨야 한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