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옛 공범자들 사이의 죽이고 싶도록 미운 감정'
작가 전혜린이 정의한 '권태기'다. '해피 엔드'는 한때의 부부가 극단의 파멸로 치닫는 치정극이다. 멜로와는 달리 치정극에는 잔인한 비극의 냄새가 난다.
아내를 죽인 남편은 감춰둔 아내 사진을 보며 오열하고, 아내가 사라진 거실에는 퀭한 햇살만이 처연하다. '해피 엔드'는 해피 엔드가 아니다.
전직 은행원 서민기(최민식)는 헌 책방에서 연애 소설을 읽으면서 시간을 때우는 실업자다. 아내 최보라(전도연)는 영어학원 원장이다. 남편은 시장보고, 애보고, 청소하고, 아내는 돈을 벌어온다.
아내는 옛 사랑 김일범(주진모)을 만나 섹스에 탐닉한다. "너에게 해준게 아무것도 없어" 군대간 사이 배신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달래기 위해 그녀는 모든 것을 준다. 마음을 주고, 몸을 주고, 가정의 행복까지 던져 버린다.
아내는 남편이 못마땅하다. "파고다 공원에서 시간을 죽이고 드라마나 보는 당신이 무슨 아줌마야?" "남의 취미를 함부로 얘기하지마. 그리고 파고다 공원이 아니라 탑골공원이야" 공허한 '항거'.
"우리 같이 죽어 버릴까" 남편은 아내와 정부가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꼭 껴안고 하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남편은 살의를 품는다.
'해피 엔드'는 바람난 아내를 주제로 한 과거 신파 에로물과 차별을 이루는 것이 디테일한 상황묘사다. 온갖 외도 끝에 집으로 돌아와서는 "내겐 당신밖에 없어요"라는 '애마부인'의 비현실적 상황을 거부한다. 보라가 일범의 전화를 받고 아이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나가는 장면은 끔찍할 정도다.
'해피 엔드'는 전도연을 위한 영화다. '내 마음의 풍금'의 촌티 가득한 소녀에서 어느새 욕정을 이기지 못하는 농염한 여인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시작하자 마자 펼쳐지는 섹스신은 관객들을 숨막히게 할 정도로 대담하다. 무명시절 대담하게 벗다가 유명해지자마자 단추를 채워버리는 일반 유형에서 벗어난 것. 영화에 대한 전도연의 '투신'이 돋보이는 영화다.
그러나 몇군데 매끄럽지 못한 장면도 있다. 보라가 일범을 멀리하게 된 계기가 뚜렷하지 않고, 잔혹한 살해에 비해 배경도 약하다. 한 중년여성관객의 얘기. "요즘 어떤 시대인데 연애하면서 휴대폰도 하나 없지?"
18세 관람가 (11일 자유1관 개봉)
金重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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