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을 보면 1910년에 대한제국이 멸망한 가장 큰 이유를 '당파싸움'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의 당쟁은 요사이 당쟁에 비한다면 그래도 정치논리가 있었다. 비록 예의문제를 빙자한 경우에도 그의 본질은 왕도정치에 기준을 둔 내용이 많았다. 그러므로 안확(安廓) 같은 분은 1923년에 출간한 그의 '조선문명사'에서 당파싸움이 역사발전에 기여했다고 붕당발전론을 제기하여 그 책은 지금까지도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 요사이 한국정치의 파당싸움의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와 반민주도 아니고 보수와 진보도 아닌 서로 흠집내기 경쟁이다. 한국은 정치꾼들이 망치고 있다는 소리가 또 나오게 생겼다. 특별검사가 수사하고 있는 옷로비사건은 옷을 샀다고 말하는 날인 1998년 12월 19일이든지 26일이든지 1주년이 다가오는데 왜 아직도 신문의 톱기사로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하는가. 역시 특별검사가 수사한다는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은 자중지란이 일어나 어떻게 결말이 날지 알 수가 없단다. 이럴때 터진 것이 '언론장악 문건'이다. 거기에 관계된 국회의원과 신문이나 방송국의 기자 등 등장 인물이 심상치 않다 싶었는데 여기에 청와대 비서의 관여설까지 나돌고 있다. 여야간에 군사정권때의 버릇을 버리지 못한 것인가? 거기에 서울 송파구와 인천 계양구 보궐선거 당시 국가정보원장의 정세분석 문서가 튀어나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아직도 정보원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인가? 놀랄 일이다.
사건들이 얽힌 가운데 이근안 고문경찰이 자수했다는 보도가 뒤로 숨었는가 했더니 고액수표와 경찰 고위직 인사의 이름과 함께 다시 부상하고 있다. 터진 김에 고문이야기가 새롭게 높아졌다. 1989년이던가, 서경원의원 사건때 고문문제가 재론되는 가운데 북한공작금 1만달러를 당시 김대중 평민당 당수에게 주었느냐의 여부가 화제에 올랐다. 머지 않아 검찰이 옛검찰을 수사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모두가 군사정권때의 이야기가 아니면 군사정권 방식의 이야기이다. 이런 일들이 민주주의 개혁의 도마 위에서 불거진 문제라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민주개혁을 덮어두었다가 정치파쟁으로 곪아터지고 있으니 문제인 것이다. 민주개혁을 기피하면 사회정의가 서지 않아 파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민주주의 기준에서 수술을 해야 한다.
지금의 당파싸움을 민주주의의 기준에서 빨리 처리하는 것만이 수습의 길이고, 지금 정권의 정당성을 역사적으로 보장받는 유일한 길이다. 그것을 파당싸움의 흥정과 승패에 따라 결말을 낸다면 정당성은 보장받지 못한다.
그러한 흥정을 당파싸움에 이력이 난 정치인들은 대화와 타협이라는 말로 미화하고 있다. 혹은 정치적 해결이란 말로 포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당파싸움보다 못하면 못했지 조금도 나을 것이 없다. 정치판이 그 모양이면 행정기강이 무너지지 않을 수 없다. 행정이 질서를 잃으면 인천노래방의 청소년 참사사건과 같은 것을 막을 방도가 없다. 행정이 통제력을 잃고 청소년도 도덕적 감각을 잃고 있는 그런 기회가 참사사건을 만드는 것이다. 조선 후기에 세도정치로 정치가 혼란할때 삼정의 문란이라고 해서 행정기강이 엉망이 되어 나라가 기울고 말았던 교훈을 심각하게 반성하고 되새겨야 한다.
지금의 한국관계 외신보도는 1950년 노근리사건과 1968년 비무장지대 고엽제 살포사건에 이목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그에 대하여 국회에서는 아무 대책이 없다. 새해 2000년의 예산안이 국회에 상정된지가 오래인데 파쟁 때문에 방치되어 있다. 민생관계 입법도 무수하게 상정되어 있다. 어느 것도 진지한 논의가 없는 것을 보면 파당흥정으로 처리될 것이 뻔하다. 한심한 사람들이여, 정신 좀 차리소서. 국민대 명예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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