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세상읽기-검소함이 창피하지 않은 사회

입력 1999-09-28 14:21:00

우리나라의 외환 보유액이 바닥나고 경제가 만신창이가 되었던 지난해 초에 있었던 일이다. 싱가포르에서 금융업을 하고 있는 유능한 젊은이 한 사람이 서울을 방문했다. 그는 미국에 살고 있는 어떤 문필가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마침 아들과 같이 서울에 체류중이었던 그 부친의 소개로 몇 번 만나 식사를 같이한 적이 있었다. 아직 결혼도 못한 삼십대 중반의 나이에 금융업에 성공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는 여러나라 말에 능통하였고, 부친을 모시는 예의가 너무나 깍듯하고 행동 하나 하나에도 매우 신중한 편이었다.

서울에 체류할 동안 그는 투자할 기업체를 찾거나 또는 투자유치를 위해 그를 초청한 기업체를 방문하느라고 매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열흘쯤 뒤에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가 있는 싱가포르로 돌아갔다.

그가 한국을 방문했었던 목적을 알고 있었던 나는, 그 젊은이의 부친에게 아들이 한국을 방문해서 얻었던 성과를 물어 보았다. 그러나 대답은 아무런 성과도 없이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의아했다. 부친의 나라의 경제가 바닥권을 헤매고 있다는 것을 알고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던 것이라면, 어째서 약간의 외화라도 떨구지 않고 그냥 돌아가고 말았을까. 그것이 개인적으로도 매우 아쉽고 서운했다. 그러나 그 까닭을 나는 며칠 뒤에 알게 되었다. 대체로 과묵한 편인 젊은이의 부친과 소주를 곁들인 식사자리에서 아들이 성과없이 돌아간 까닭을 비로소 털어놓았기 때문이었다.

아들은 서울에 체류할 동안 대여섯의 기업체를 방문했던 모양이었다. 그가 방문했던 기업체 중에는 이름을 거론하면 당장 알아챌 수 있는 대기업도 포함돼 있었다. 기업체가 들어있는 건물에 도착하면 그는 곧장 엘리베이터에 올라 사장실이 자리잡은 층에 도착했다. 공장이나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을 견학시키기 전에 맨 처음 보게되는 곳이 경영자의 집무실인 사장실인 것은 우리의 시선으로선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바로 그 사장실이란 곳이 문제였다. 집무실의 부대시설이라 할 수 있는 곳을 안내를 받아 돌아볼 적 마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싱가포르로 돌아가고 싶었다 한다.

건물의 한 층을 거의 차지하다시피한 떡 벌어진 집무실의 부대시설이 또 어마어마한 것에 그는 놀라고 말았다. 당구대와 골프연습장, 사우나시설과 호텔을 능가하는 침실까지 곁들인 사장실을 갖추고 있는 기업이 어째서 남의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 자기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창업 당사자도 아닌 2세 경영인인 그가 그런 시설들을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는 것도 그에겐 의미심장할 수밖에 없었다.

몇년전, 전자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미국 서부의 한 기업체를 방문했던 적이 있다. 마침 사장실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방문 앞을 지키고 있던 중년의 비서는 우리 일행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그때까지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었던 사장님이 흡연을 위해 잠시 옥외로 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창사 이래로 흑자행진만을 거듭해온 그 유서깊은 전자기업의 사장실은 주차장을 배경으로 둔 건물 구석자리에 배치돼 있었고, 방에 놓여있는 낡은 책상 위에는 컴퓨터 한 대가 휑뎅그렁하게 놓여있을 뿐이었다.

프랑스에서 두번째 가라면 서러운 유명한 포도주회사의 사장을 포도밭에서 일하는 잡역부로 알았다가 얼굴을 붉혔다는 일화도 들은 바 있다. 남의 귀중한 돈을 구걸해서 기업을 경영해야 하는 우리의 모습과 처지가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를 뼈아프게 가르쳐 주는 대목들이다. 샐닢을 가져도 이알이 곤두서서 떠벌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는 전통이란 것이 뿌리내릴 자리는 없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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