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사가 있는 황악산과 금오·수도산으로 삼산(三山)이 되고 직지천과 합해져 낙동강 지류를 이루는 감천으로 이수(二水)를 이뤄'삼산이수'로 상징되는 김천.
서울과 부산간 경부선과 경부고속도로의 중간지점에다 동쪽으로는 경부선 철도가 연결되고 여기에다 서쪽으로는 거창방향 국도가 연결되는 등 사통오달의 교통요충지로서 한말엔 전국 5대 시장의 하나로까지 명성을 날렸고 한때 가장 살기좋은 곳으로 손꼽히기도 했던 고장.
이런 까닭에 지난 49년엔 대구·대전·포항 등지와 나란히 시로 승격될 정도의 세를 자랑하던 김천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영화에 비하면 김천의 현주소는 너무나 초라하다. 대구·대전은 열외로 하더라도 당시 4만 인구로 비슷한 세를 이루던 포항과 비교해도 천양지차로 뒤쳐져 있기 때문이다. 아직껏 주민수 15만에 머물고 있는 김천에 비해 조그만 항구도시에 불과했던 포항은 이미 52만 인구의 경북 제1의 도시로 성장해 버렸다. 무엇이 동등한 출발선상에 있었던 이 둘을 하나는 지진아로, 또 다른 하나는 우등생으로 만들어 놓았을까. "공단의 힘이지요. 포항도 포철이 들어서기전인 60년대말까지 뻘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20여년이나 뒤쳐져 도시형태를 갖춘 인근 구미가 공단이 들어서면서 김천을 한참 앞서 나가고 있듯이 말입니다"도청에 근무하는 한 직원의 풀이다. 그러나 김천에 들어서면 큰 맥락은 같지만 이를 지역출신 정치인들의 영향력과 애향심 차이에다 초점을 맞추는 시각들과 더욱 많이 만나게 된다.
김천시내 한 부동산 중개소에서 만난 김모(47)씨는"박태준씨나 박정희대통령 같은 이가 김천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옆에 앉았던 이모(67)씨도 "우리에게도 공화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백남억씨 같은 분이 있었지만 고향에 대한 애정이 모자랐던 때문"이라고 말을 받는다. 그러면서 그는 "60년대말 김천과 삼천포간 철도 기공식 당시 참석했던 백씨가 상경한 뒤 별 신경을 쓰지 않아 없었던 일이 돼버렸다"면서"당시 그것이 완공되었다면 김천이 좀 더 나아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갓 떨어져 나간 양반마냥 과거만 되씹으며 넋 놓고 앉아 있을수는 없을 터. 김천에도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 한창이었다.
낙동강의 한 지류이면서도 폭 200m로 장강을 이루고 김천을 남서에서 동북 방향으로 휘 가르는 감천을 적극 활용하고, 남한 내륙 중심지에 위치해 전국 어디건 반나절이면 갈 수 있는 교통요충지란 이름 값에 걸맞은 사업을 펼치는 일들이 그 것감천 풍부한 물을 이용해 시내에 위치한 기존의 김천공단에 이어 구성면 송죽리 24만5천평에 조성한 구성공단. IMF로 분양이 안돼 애를 먹다 최근에 분양이 완료, 짐을 하나 덜어 놓고 있었다.
지난 8월 완공된 아포읍 농공단지도 김천 IC(15㎞),구미IC(8㎞), 왜관-영동간 국도 4호선, 상주-거창간 국도 3호선 등과 904호 지방도가 인접해 있고 김천-구미간 지방도 4차로 확장 포장사업, 현풍-아포-여주간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아포-포항간 고속도로 건설사업 추진 등 호조건의 교통입지에 힘입어 쉽지 않은 시기임에도 불구 이미 완전 분양됐다. 모두 제대로 가동되기 시작하면 녹록찮은 고용창출과 시 수입을 담보할 효자들. 또 변변한 체육관하나 없어 시 승격 50년만에야 마침내 내년 도민체전 유치에 성공한 일도 민망하기는 하지만 모처럼 김천에 활력을 불어넣을 이벤트가 되고 있다.
하지만 하는 일마다 제대로 풀려나가기는 쉽지 않는 것일까.
정작 교통요충지임을 십분 활용,김천을 크게 도약시킬 아포읍 대신·봉산리 일대 영남복합화물터미널 문제가 구절양장으로 꼬여 애간장을 다 태우고 있었다.
지난 97년 건교부에 의해 민자 유치로 김천 유치로 확정된 이 사업은 IMF탓에 민자유치가 어려워지면서 감사원에서 입지 재검토 지적을 받은 후 지난 3월 칠곡 이전 가능성이 제기되더니 최근엔 급기야 모든 것을 백지화하는 쪽으로 정부 방침이 발표돼 버린 것.
이 때문에 김천이 입고있는 피해는 한 둘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넘들 다하는 신품종으로 나무를 바꾸지도 못하게 하고… 지난 3년간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지"
예정지로 지정된 대신 3리.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더위를 식히느라 모여있던 동네 노인들이 저마다 불만을 터뜨렸다. 사업이 제대로 안되고 있는 이유를 푸는데는 이들 노인들네도 일순위는 정치였다. "아, 그 칠곡 국회의원이 여당 사람이라며""총선이 다가오는데 보나마나 선거가 있고나서야 가닥이 잡히겠지"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고용창출 효과만도 7천여명에 달할 이 사업의 유치 불투명으로 인해 유치를 전제로 김천이 지난 3년전부터 추진해 온 아포읍 한지택지개발 공사와 이미 분양완료된 농공단지의 활성화 등 김천의 21세기를 기약할 기본 틀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진퇴의 절체절명 기로. 그러나 이 사업과 관련, 정부가 백지화 방침을 내렸음에도 김천은 의외로 담담해하고 있다.
지난 3월 칠곡이전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김천존치 시민 서명운동에 이어 4월 김천시 사상 유례없는 3만명의 시민이 운집해 범시민 궐기대회를 치뤄 한 차례 분노를 표출한 뒤끝이어서일까. 그도 아니면 시민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묻어 나오고 있는 정치력의 상대적 열패감에 따른 체념?
그러나 그렇지는 않아 보였다. 오히려 자신감의 발로로 느껴졌다. 지난번 서명운동과 궐기대회는 김천시민 스스로가 놀랄 만큼 응집력을 보여준 일대 사건이었다. 지역 실력자들이 앞장서고 시민에다 심지어 출향민들까지도 한마음으로 동참하고 나선, 그야말로'대동제'였던 셈이다.
결국 김천이 새 천년을 앞두고, 또 시 승격 50주년을 맞아 얻은 가장 큰 축복은 바로 '우리도 뭉치면 못 할 것이 없다'는 강한 자신감과 다시 자극받은 애향심일 듯 싶었다.
-글: 姜錫玉·裵洪珞기자, 사진:閔祥訓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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