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나눔의 미덕

입력 1999-09-11 14:08:00

대학시절, 철저한 허무주의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적이 있다. 당시 신학을 공부하던 내가 개인적인 갈등으로 많이 흔들렸던 시기였다. 군부 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암울한 70년대 후반이었다. 시대적 아픔에 절망하고 인간과 역사를 고민하던 숱한 사람들에게 나는 냉소와 조롱을 보내기 일쑤였다. "그래, 나도 아는데 그게 어쨌다는 거냐"는 식으로 코웃음치며 긴 겨울잠을 청하고 있었다.돌이켜 보면 어줍잖은 식견으로 나만의 세계에서 몸부림치던 시절이었다.

그런 나에게 벼락같은 음성으로 호통치던 한 청년이 있었다. 자본과 권력이 짐승같은 모습으로 인간성을 말살하는 비참한 삶의 현장에서 "근로기준법 보장하라"며 불길 속에서 죽어갔던 청년 재단사를 그 때 만났다. 미래가 보이지 않던 현실속에서 자기 몸을 불살라가며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실천했던 노동자 전태일을 만나면서 나는 비로소 겨울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70년대는 자본이 부패한 권력과 야합하며 인간을 착취했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그저 숨죽여 살아가는 절대적 빈곤과 고난의 시대였다. 거기엔 인간도 인권도 없었다.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군부와 썩은 내 나는 관료들이 있었다. 탐욕스런 권력에 개처럼 순종하는 착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태일의 죽음은 권력과 결탁한 자본에 대한 항거이자 도전이었으며,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기 위한 숭고한 사랑의 시작이었다.

전태일을 처음 알았던 대학시절이나 지금이나 내 삶의 화두는 사랑이다. 혁명을 노래하고 해방을 꿈꾸었던 다소 과격했던 사랑법은 이제 접었지만 또 다른 사랑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나눔'이다. 이젠 70년대의 '전태일식'사랑이 아니라 '21세기식'사랑이 필요하다. 가진 자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혈연,지연에 의한 '나눔'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나눔'을 가져야 한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공동체의 미래와 진보를 생각하는 참다운 '나눔'이야말로 21세기형 사랑법이다.

좋은 날은 하루 아침에 오는 것이 아니다. 혁명의 큰 꿈만 품고 근본을 다져나가지 않으면 오히려 진보를 가로막는 해악이 될 수 있다.

한가위를 앞두고 있다. 병들고 소외된 이웃이 없는가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자. 삶의 이곳 저곳에서 사람을 그리워 하는 이들을 위해 한 번쯤 그들을 찾아가 손한번 잡아줄 수 있는 '나눔'의 미덕을 가져보자.

선명요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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