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일본과의 또 따른 전쟁

입력 1999-09-10 14:57:00

권희로씨는 일본과의 전쟁을 일단 마감하고 귀국했다. 지난 68년. 폭설로 하얗게 덮인 스마다계곡 산 중의 한 여관에서 수모와 차별과 억압의 세월을 견디다 못한 끝에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선언하며 인질극을 벌인지 30여년 만이다. 그의 고국은 절대적으로 그를 반겼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어떤가. 민족차별의 항거보다는 '인질극'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게 바로 가깝고도 먼 이웃의 몸서리쳐 지는 증거다. 백제 13대 근초고왕때 박사 왕인(王仁)은 논어와 천자문을 일본에 전했다. 처음으로 유교를 일본에 전파한 것이다. 이를 시발로 우리의 문화가 일본으로 엄청나게 흘러 들어갔다. 도쿠가와(德川)시대에 꽃핀 유학도 중심은 퇴계(退溪)선생의 주자학이다. 그렇지만 오늘의 일본인들은 아무도 이런 사실을 입밖에 잘 내려 하질 않는다. 그저 문화적 망은증(忘恩症)으로 치부해 버리기 일쑤다. 오늘부터 일본 대중가요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개방됐다. 덩달아 영화도 대폭 문을 열었다.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것은 불허한다고는 하지만 곧이 들을 사람은 없다. 사실상 대문 빗장을 확 제낀 것이나 다름없다. 한일간의 대중문화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웬만한 중고생, 심지어 초등학생의 가방을 뒤져보면 일본의 인기 록 밴드 'X재팬'의 스틸 사진 한장씩은 있다. 좀 더 이런것에 빠진 학생들은 아예 불법복제된 음반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이들 학생들 대부분이 아무런 의식없이 멋이나 자랑거리로 알고 있으며 그야말로 속절없이 대중적인 인기에 부응해 간다는 점이다. 당국은 그렇기 때문에 지난해에 이어 순차적으로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하고 있다지만 과연 우리쪽의 대응은 그동안 충분히 준비되었다고 할수 있을까. 척박하고 얇은 우리의 대중문화 층을 공식적으로 무차별 공격할 일본 대중문화가 걱정이다. 일본과의 또다른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김채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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