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데스크-이름다운 나라 만들기

입력 1999-09-07 14:25:00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일찍이 나라와 민족이 나아갈 길을 제시했던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은 '나의 소원'이라는 저서에서 이같이 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우리나라는 역사가 말해 주고 있듯이 '문화의 나라'이다. 구석기문화를 포함하면 30만년의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 신라시대에는 석굴암을 창건했다. 고려 때는 청자를 빚었으며, 조선조에는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우리는 이같이 '인간이 지닌 높은 정신의 소산'이라 할 수 있는 문화 유산들을 한반도의 도처에 푸짐하게 지니고 있다. 그러나 '문화의 선진국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그 민족의 문화 유산이 얼마나 뛰어나고 얼마나 잘 보존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한편 부끄러움 또한 숨기기 어렵다. 많은 문화 유산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보존에는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제사회에서 문화 전통에 의한 국가 경쟁력을 과시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너무나 많고, 그 빛나는 전통이 무색해지는 경우를 다반사로 바라보아야만 한다. 하지만 '늦다고 느낄 때가 빠르다'는 말이 있듯이 이제부터라도 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우리 문화재의 보존이나 복원에는 끊임없이 우려의 소리가 따르고 있는데도 방치되거나 졸속 보수 공사로 원형이 바뀌는 위기를 맞고 있으며, 문화재청은 여전히 주먹구구식 대책에 급급한 형편이다.

얼마 전에는 국보 2호인 원각사지 10층 석탑이 유리보호각 설치 공사 도중 화재로 그을리는 사고가 발생하더니, 경복궁과 창덕궁 복원 사업에는 젖은 수입목재가 사용돼 말썽을 빚었다. 국보급 금동관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전시 준비 과정에서 훼손됐고, 국보 81호인 감산사 석조미륵보살 입상이 독일과 스위스 순회전시 도중 되돌아올 위기라는 소식도 들렸다.

어디 그 뿐인가. 전북 김제의 귀신사 보물 826호 대적공전은 흰개미 피해로 기둥과 마루가 기울고 보와 벽이 뒤틀려 붕괴 위험에 놓여 있으며, 경남 양산의 통도사 약사전 기둥 8개 중 5개도 흰개미의 공격을 받아 크게 훼손됐다. 안동 봉정사의 국보 15호인 극락전은 대들보 가운데가 처지고 보물 55호인 대웅전은 비가 새는가 하면,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은 일부 기둥 윗부분을 흰개미가 파먹어 지붕이 찌부러진 상태다.

문화재의 보고인 경주의 사적 6호 황룡사터 전시관 건립 강행으로 왕경 유적 환경이 파괴될 위기에 놓였으며, 사적 40호인 천마총(155호 고분) 내부 석실이 비만 오면 물이 고이고, 평소에도 습기가 심해 원형 훼손이 우려되는 실정이다. 다행히 문화재청은 국고 1억5천만원을 들여 최근 집중호우 때 침수 피해를 입은 천마총을 전면 보수할 움직임이지만 기대해도 좋을지 모를 일이며, 훼손된 각종 문화재들을 과연 어떻게 보수할 것인지도 궁금하다.

올해 5월 문화재관리국이 38년만에 문화재청으로 승격됐지만 건조물 관리 전담 인력은 고작 4명으로 전국 1천여 건조물을 점검하는 데도 역부족이다.

다른 분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학예직 중심의 행정, 전공자들의 적극적인 채용, 재교육 기회 부여 등이 가장 시급한 과제임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또한 문화재 보존 관리의 강화, 연구 기능 확대, 다른 문화기관들과의 협조 증대, 새 문화 창출 기여, 관광자원 개발, 문화재 행정의 효율성 높이기 등도 문화재청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들이다.

선조들의 의식과 숨결이 담긴 귀중한 문화 유산들을 보존하고, 그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기 위해 관계 당국은 첨단 기술 개발과 함께 새로운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백범 선생이 일깨운대로 우리 모두도 '높은 문화의 힘'으로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이다.

이태수(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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