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대구시 서구 비산7동에 있는 민간도서관 '더불어 숲'. 뻑하면 라면을 나눠먹자고 조르던 초등학교 4학년 경태 녀석이 친구들까지 끌고 쳐들어왔다. 이 도서관 구경래(37) 관장은 전날 "넌 집에 가면 좋은 음식이 많지만 아저씨에겐 라면 밖에 없다"고 타박을 줬던 기억이 나 슬그머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날 만은 달랐다. 도서관 구석으로 구관장을 끌고간 녀석이 가방 속에서 라면 5개를 슬며시 꺼내더니 "관장님만 드세요"라고 속삭이는 것이었다. 생활비도 안 나오는 민간도서관 관장 노릇. 이렇게 보답받는 것일까? 구관장은 이날 철없는 녀석의 자그마한 정성 때문에 눈물을 참느라고 혼이 났다.
민간도서관 더불어 숲의 모체는 지난 94년 전직 노동운동가인 구씨와 현재 숯불돼지고기 체인을 운영하는 김종원씨 등이 모여 만든 '대구정보생활도서관'. 종이 매체(책)는 물론 PC통신, 인터넷 등으로 노동자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취지를 가졌던 이 모임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성격을 바꿔 독서문화 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하루 50~70여명의 어린이들이 들르는 더불어 숲은 변변한 복지관이나 여가공간이 없어 '문화의 섬'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비산5·7동에서 풀뿌리 문화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어린이 도서에서 전문서적까지 8천여권의 도서가 비치돼있으며 회원도 지난 6년 동안 3천여명으로 늘어났다. 정보는 공유돼야한다는 '원칙' 때문에 회비나 대여료는 받지 않고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대부분 부모가 비산동 부근 공단이나 재래시장에 종사, 같이 어울리지 못하는 대신 더불어 숲에서 책을 읽고 토론하며 등산, 영화, 독서토론 등 다양한 소모임을 만들어 나름대로의 문화를 형성해간다. 최근에 비치한 컴퓨터 4대도 집에 컴퓨터가 없는 아이들에게 인기다.
더불어 숲이 최근 학부형을 독자층으로 하는 주간신문 '아이들 따라잡기'를 발간하고 '동화읽는 어른 모임'을 만들기로 한 것은 어린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부모들을 독서운동에 동참시키자는 전략. 독거노인 돕기 등 자원봉사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구관장은 "어릴 때 부터 지나치게 영상문화에 몰입하면 두뇌가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한다"며 "어린이들이 독서에 친숙하게 해 균형있는 성장을 이룰 수 있게 해야한다"며 독서문화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겠다고 다짐했다.
李宗泰기자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