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향-네오걸리즘

입력 1999-07-28 14:01:00

"정환아, 나랑 살자"

"야, 넌 내가 찜했어. 한눈 팔지마"

남학생이 아니라 여학생들이 길거리 혹은 집에서 거리낌없이 내뱉는 말들이다. 대구의 도심 동성로를 가득 메운 소녀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거칠고 남성적이기까지 해서 다소곳한 말씨, 수동적인 여성상을 기대하는 기성세대들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우리 사회 전반에 불어닥친 남녀 차별적인 관행의 퇴색과 성(性, gender)구별이 희박해지는 '젠더리스'(genderless)의 물결을 타고 씩씩한 소녀, 소년같은 소녀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네오걸리즘'(Neo-Girlism)으로 불리는 이러한 경향은 억세고 거친 말투, 소년차림의 보이시 스타일과 같은 외형적인 변화 뿐만 아니라 학교생활·친구관계·학습능력·소비·장래희망 등 모든 면에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남학생을 숨기지 않고 터놓고 이성관계를 주도하는 여학생들이 적지않다"고 한국걸스카우트대구연맹 김영숙 사무국장은 말한다.

98년 여대생 비율은 서울대 25%, 연세대 34%, 고려대 25%로 높아졌고, 99년 경북대 신입생 가운데 45.8%를 여학생이 차지, 경북여대(?)가 되지 않느냐는 우려 아닌 우려를 빚기도 한다.

신앙생활이나 취미클럽의 리더도 여학생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데 올해 성당이나 교회의 여름 신앙학교를 이끄는 조장의 절반 이상을 여고생들이 차지하고 있다.

"신세대 축구스타 안정환을 좋아하는 중1 딸이 대형 브로마이드를 걸어놓고, 자기랑 살자고 적어놓은 것을 보니 누구를 좋아해도 말도 못한채 가슴에 묻어두고 혼자서 끙끙 앓던 우리 시절과는 판이한 느낌이 든다"고 40대의 한 주부는 털어놓는다.

그러나 네오걸리즘이 확산되면서 은어나 비속어를 거리낌없이 내뱉거나 약물남용 여학생이 늘어나는 부정적인 현상도 덩달아 빚어지고 있다.

"야, 너 눈이 삐었냐. 걔 ×나게 재수없는 애야"류의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고 통용되고 있으며, 여고생 흡연율이 88년 1.3%에서 97년 9.9%로 무려 8배나 증가하는 부정적인 현상을 수반하고 있기도 하다.

"남자같은 여자, 강한 여성을 지향하는 사회적 환경변화와 함께 네오걸리즘이 확산되고 있다. 일부 부정적인 현상 때문에 그 자체를 잘못된 현상으로 인식하는 것은 불합리한 태도"라고 여성학강사 정명란씨는 말한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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