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란 무엇일까.
귀신이나 구미호, 드라큘라로 인해 인간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까.
어쩌면 공포는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 아닌, 인간의 내면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그 어떤 것'일 지도 모른다.
공포스런 미술작품이 공포영화나 공포문학보다 '오락적인 두려움'으로서의 가치는 떨어질지 몰라도 견딜수 없이 힘든 현실에 괴로워하는 이들로부터 더 공감을 얻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현란한 특수효과나 괴기스런 줄거리같은 외부 자극이 아닌, 정신적 고통의 묘사에 충실한 것이 공포미술의 특징.
두려움을 자극하는 미술작품을 가리키는 '공포미술'이란 장르가 정확하게 형성돼 있지 않은만큼 공포미술의 역사도 짧다. 미술은 '아름다움'을 표현해야 한다는 작가들의 강박관념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결코 아름답지 못한 현실의 묘사도 예술적 가치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공포미술'이라 불릴만한 작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포미술 작품들은 주로 인간, 즉 작가의 정신적 고통과 두려움을 주로 표현했다. 때문에 작가들의 정신적 이력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넘나든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귀를 막아도 들리는 소리
◇뭉크 '절규'
공포미술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절규'를 그린 노르웨이 작가 에드바르 뭉크. 어릴적 어머니와 누이를 병으로 잃은 그는 평생 질병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려 안색이 나빠보인다는 얘기만 들어도 며칠씩 침대에 드러눕곤 했다. 또 장례식에 절대 참석하지 않았고 '죽음의 향기'를 내뿜는다며 꽃조차 혐오했다고.
그림에서는 유령같은 외양의 인물이 자신의 귀를 틀어막고 절규하고 있다. 하늘은 핏빛. 모든 형태는 내면의 동요를 반영하듯 꿈틀거리고 있다. 공포에 질려 일그러진 주인공, 뭉크는 저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지만 무서운 소리를 피할 수 없다. 실은 그 절규가 자신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젠 당신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절규에 귀 기울일 때다.
◈모든 것으로 부터의 억압이…
◇키리코 '장미색의 탑'
어머니의 권위가 절대적인 가정에서 성장해 작품마다 어머니에 대해 공포에 가까운 경외감을 표현했던 이탈리아 화가 조지 데 키리코. 그는 전혀 괴기스럽지 않은 일반적인 사물들을 나열, 묘한 공포감을 형성하는 작품을 상당수 제작했다.
작품의 대부분이 어두움에 싸여 있는 '장미의 탑'은 나약한 아버지를 상징하는 붉은 탑, 강하면서도 무서운 어머니를 나타내는 아케이드(늘어선 기둥)가 화면 전체를 뒤덮고 있다. 양편에 늘어선 기둥들의 검은 그림자속에서 누군가가 금방이라도 불쑥 튀어나올 듯 해 보는 이의 가슴을 죄게한다. 그것은 귀신도 드라큘라도 아닌 모든 것으로부터 억압받는 우리자신 강박관념이다.
◈경련…광란…전쟁의 공포
◇달리 '내란의 전조'
전쟁의 공포를 초현실주의적 기법으로 표현한 '내란의 전조'는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지구 종말을 예고하듯 연기로 뒤덮인 하늘을 배경으로 거대한 인간이 자신의 몸뚱아리를 찢고 있다. 사지가 뒤틀린 채, 고통과 광란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스스로 목을 조르고 있다. 괴물같은 손 하나는 여인의 유방을 짓이기고 손가락·발·혀 등은 경련을 일으킨다. 인간이란 귀신의 흐느낌이나 검은 고양이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면서도 정작 전쟁이라는 가장 거대한 공포는 너무나 쉽게 생각하는, 그래서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존재.
◈죽음의 신이 당신의 목을…
◇뵈클린 '해골이 있는 자화상'
자신만만한 표정의 젊은이를 그린 '해골이 있는 자화상'은 스위스 화가 아놀드 뵈클린의 작품. 본래 일반적인 자화상을 완성했지만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사신(死神)의 목소리를 듣고 보기에도 섬뜩한 해골을 황급히 그려넣었다고. 마치 사신의 속삭임을 귀기울여 듣는 듯한 표정. '젊은이들이여! 죽음의 신이 당신의 목을 노리고 있으니 젊음을 자랑하지 말게'라고 뵈클린은 말하고 있다.
◈괴물처럼 찢겨진 인간
◇베이컨 '비명'
'현실은 아름답지 않다. 오히려 너무나 잔인하다'. 평생 마약중독자, 푸줏간 등을 소재로 공포와 고통을 화폭에 담은 영국의 프란시스 베이컨. 그는 가장 신성한 인간 교황마저 전기의자에 앉은 사형수처럼 표현할 정도.
삶을 고통으로 본 배경에는 하인, 가구 디자이너를 전전하다 30세에 이르러 겨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험난한 그의 인생이 자리잡고 있다. 베이컨의 관심은 견딜 수 없는 현실의 고통속에 괴물처럼 찢겨진 처참한 인간에 집중된다.
'비명'은 인간 탄생의 순간과 죽음의 시간에 동시에 나타나는 지극히 양면적인 요소. 무성영화 '전함 포템킨'의 한 장면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 '비명'은 죽음을 앞둔 부상자의 처절한 공포를, 동시에 자유를 향한 울부짖음을 담고 있다. 공포·고통·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은 그것을 숨기고 무시하는데 있지 않다.
오히려 작품을 통해 그것들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도 같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림으로써 모든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 그것이 공포를 쫓는 방법이자 공포미술만의 매력일 것이다.
金嘉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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