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원의 부산교도소 탈옥은 무려 3년의 사전 준비기간과 2개월여에 걸친 본격 준비기간을 거친 치밀한 범행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부산지검은 신을 상대로 벌인 이틀째 조사결과와 17일 오후 실시한 현장검증을 토대로 신이 부산교도소를 탈출해 서울 천호동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발표했다.▲탈출 준비과정
신은 94년 11월 16일 부산교도소로 이관된 뒤 97년 1월 20일 탈출하기까지 모범수로 생활하며 감시가 느슨해지자 교도소 내부를 정밀관찰, 교도소 내 교회 신축공사장을 통해 탈출하기로 마음 먹는다.
신은 96년 10월께 교도소내 영선창고에서 쇠톱을 주워 속옷에 감추고 목공작업장으로 가져 온 뒤 운동화 밑창을 뚫어 넣고 수감 감방으로 옮긴다.
이때부터 신은 위장병과 변비를 이유로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아 80㎏이던 몸무게를 탈옥 당시 60~65㎏까지 감량한다.
신은 낮시간에는 쇠톱을 감방내 마루장판 틈에 숨겨놓고 음악이 나오는 오후 6시부터 오후 8시사이 매일저녁 20여분씩 감방내 화장실 환기구의 쇠창살을 자르는 작업을 계속한다.
신은 잘린 쇠창살을 위장하기 위해 교화위원이 주었거나 바닥에서 주운 껌을 쇠창살에 붙여 놓았으며 동료 재소자들이 모르게 하기 위해 절단작업중에는 화장실 입구에 수건을 걸어놓는 치밀함도 보였다.
▲탈출 실행과정
2개월여에 걸친 쇠창살 절단작업이 거의 마무리된 97년 1월 20일 새벽 3시 신은 쇠창살을 손으로 치고 환기구를 빠져나간다.
이 과정에서 신은 가로 세로 30㎝의 환기구를 빠져나가면서 양쪽 어깨에 심한 상처를 입게된다.
환기구를 빠져나온 신은 교회 신축공사장에 설치된 철판의 아래쪽을 환기구 쇠창살을 이용해 구멍을 파고 통과한 뒤 공사장과 감시초소 사이를 통과, 교도소 외벽을 지지대와 밧줄을 이용해 넘어 탈출에 성공한다.
이때 시간이 새벽 4시 30분께로 교도소를 벗어나는데 모두 1시간 30분이 걸렸다.▲최초 도피행적
교도소를 벗어난 신은 500여㎝ 떨어진 비닐하우스 앞길에 세워져 있던 자전거를 훔쳐 2㎞ 떨어진 이모(62)씨 소유의 화원에 침입해 양복과 구두, 코트, 칼, 자전거를 다시 훔친 뒤 옷을 갈아 입고 구포사거리쪽으로 달아난다.
이날 오전 6시께 구포사거리에서 신원미상의 50대가 운전하는 택시를 타고 양산인터체인지와 경부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를 거쳐 서울 천호동으로 향한다.
서울 천호동은 신이 89년 구속전 동거했던 이모(당시 24)양이 일하던 윤락가가 있던 곳으로 서울에 도착한 신은 윤락가와 이양 부친의 가게를 찾았으나 이양이 없자 성남시외버스터미널로 가 버스편으로 천안에 도착한다.
천안에서 신은 탈출후 최초 행적이 발각된 97년 10월 15일까지 다방종업원 전모(30.여)씨와 동거하게 된다.
▲탈출 동기
신은 무기수로 희망없는 삶에 대한 회의와 자유에 대한 동경이 가장 큰 탈출동기였다고 밝혔다.
또 탈출 직후 옛 애인이었던 이모양을 찾아간 것으로 미뤄 애인에 대한 그리움도 동기로 작용했으며 검거 당시 친구 매형이며 천호동 윤락가 포주인 이모씨가 애인 이양을 보고 모욕적인 말을 한 것에 대해서도 앙심을 품었다고 진술했다.
이밖에 신은 전주와 대전교도소에서 난동을 부리고 담배를 피웠다는 이유로 3회에 걸쳐 징벌을 받은데 대한 불만도 탈출을 감행케 하는 동기가 됐다.
▲현장검증 및 수사내용
검찰은 신을 상대로 17일 오후 4시 15분부터 오후 6시까지 탈출경위에 대한 현장검증을 벌였다.
신은 순순히 범행을 재연했으며 당시 현장상황과 다른 부분까지 지적하는 여유도 보였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지금까지의 수사내용으로 탈출에 있어 교도소 내.외부의 도움이 있었다고 인정할만한 자료는 없다"며 단독범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으나 "단독범 여부에 대한 최종 결론은 추후 수사를 보강한 뒤 내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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