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일구이언의 책임

입력 1999-07-17 14:24:00

구한(舊韓)말 벼슬길에 오르지 않은 선비로서 망국의 책임을 통감한 나머지 자살의 길을 택한 매천 황현(黃玹)선생의 절명시중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어렵기만 하구나"라는 구절은 지금도 지성인에 대한 아픈 채찍이 되고 있다.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야할 소임을 다해야할 지성인이 그렇지 못했다면 비록 국록을 먹지 않았더라도 죽음으로 사죄해야할 만큼 무거운 책무를 느껴야 한다는 뜻이 담긴 것이다. 그러나 근래에 이르러 국민과의 약속을 식은 죽먹듯 뒤집고도 애국자연하는 정치권인사들의 행태를 보노라면 매천선생이 구천에서도 분노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내각제개헌 유보론만해도 그렇다. "내각제만이 살길"이라 했던 JP와 그의 추종자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같은 입에서 "내각제로 국론이 분열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나와 세상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내각제는 나라 죽이는 길인가, 살리는 길인가. 내각제 주장과 대국민공약의 최고책임자인 김종필총리는 이같은 일구이언(一口二言)과 혼란에 책임의식은 고사하고 구국적 결단을 내린 것 같은 당당한 태도인데 반해 같은당 자민련 김용환 부총재의 당직사퇴는 당혹스럽다. 당의 노선과 국민에 대한 부총재로서 책임때문인지, 모시는 수장의 허물을 대신 사죄하는 뜻인지 아직 아리송하다. 형식적으로는 공동여당간의 최종처리가 남아있기 때문에 당적이탈까지 고려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내각제 연내개헌의 무산이 공식확정 된다면 그는 당원으로서 황매천과 같은 결단을 요구받게 될지 모른다. 더욱 궁금해지는 것은 전체 자민련의원들의 거취다. 국민들에게 내각제는 나라죽이는 길이란 설득에 나서야 한다면 JP와 같은 일구이언을 할 수밖에 없고 대선때 지지를 보낸 국민들에게는 배신과 무책임의 질책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홍종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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