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에 예쁘장한 소녀들이 떠오른다. 깜찍한 소녀, 섹시한 스타일, 보이시한 타입 등. 자신이 원하는 소녀를 선택한 후 게임을 시작하고 점수에 따라 그녀들은 옷을 벗기 시작한다.
여성을 상품화시킨다는 끊임없는 비난속에서도 널리 보급돼 이젠 더 이상 신기하지 않을 정도로 일반화 된 컴퓨터 게임의 한 형식이다.
이 정도로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몇 년전 국내 한 힙합그룹이 발표한 뮤직 비디오를 감상해보자. 한 남자 멤버가 리무진 뒷좌석에 몸을 기댄후 전자 고글을 착용하자 한 여성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난다. 장소를 선택하라는 문장이 찍히고 현란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그는 야릇한 포즈로 무언가에 열중한다.
고작 하루 앞을 알지 못하는 인간이 백년, 천년 뒤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은 어찌보면 허황된 일. 하지만 인간의 미래는 어쩌면 바로 우리 옆에 있는 지도 모른다. 현재가 곧 미래의 밑그림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이 인간의 생활 뿐 아니라 사회적 현상까지 좌우한다는 '기술결정론'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과학'이 성(性)에 대한 인류의 생각과 생활을 바꿔놓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그 예는 과거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여성 호르몬 분비를 조절해 출산을 조절할 수 있게 한 '경구 피임약'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것은 1960년. '신의 섭리'를 거스른다는 이유로 숱한 찬반 양론속에 시판된 이 약품은 종족 번식 수단에 불과했던 '성'을 '즐거움'의 하나로 변모시켰다. 또 여성이 스스로 임신을 조절하고 자신의 인생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함에 따라 여성 지위 향상에도 크게 기여했다.
한 약품의 발명이 '성'에 대한 인식 변화를 가져왔고 그것이 '여성해방'이라는 커다란 사회적 현상을 몰고온 것이다.
다음 세기 경구 피임약의 역할을 대신할 수단은 '컴퓨터'가 될 듯하다.
그 조짐은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불과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 성적인 대상을 컴퓨터속에서 선택하는 컴퓨터 게임, 인터넷 서비스가 점차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조성한 환경을 인간이 실제처럼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가상현실' 기술이 이런 변화에 속도를 더하고 있다. 그 결과 섹스산업과 가상현실기술의 결합은 '사이버 섹스'의 확산을 가져올 전망이다. 20세기 인류의 시각에서 봤을 때 결코 정상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않은 현상이지만.
미래사회의 성을 예견한 학술적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 대신 우리는 SF영화속에서 그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영화 '데몰리션 맨'과 '론머맨'.
19세기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소설 '해저 2만리'에서 원자력 잠수함을 예견했듯 예술 작품이 오히려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미래사회를 보다 잘 묘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 영화를 참고할만 하다.
'데몰리션 맨'에서 냉동인간이 돼 미래사회에 간 '현재' 경찰 실버스타 스텔론이 미래 여성과 성관계를 가진다. 하지만 여기서의 성관계란 상대 여성과 멀찍이 떨어져 앉아 전자 고글을 쓴 채 가상현실로 빠져드는 것. 실제로는 상대의 손목 한 번 잡아보지 못한다. 각종 질병이 전염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니 위생적이어서 좋지 않냐는 것이 어리둥절해 하는 스텔론에게 던지는 미래 여성의 반문이다.
주인공이 컴퓨터속 가상현실 세계로 들어가 그곳의 왕이 된다는 영화 '론머맨'에서는 인간과 컴퓨터가 정사를 벌이는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이버 섹스의 보급은 인간의 성적 상상력을 현실에 가깝게 구현함으로써 새로운 성 문화를 형성할 뿐 아니라 2차적으로 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이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결혼제도'가 될듯. 과학기술의 발달로 가사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남·녀 독신자가 증가했던 20세기말의 사회적 현상은 시작에 불과하다. 결혼을 하지 않고도 성욕구를 자연스럽게, 그것도 경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면서 독신자들이 양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현상에 대한 반작용으로 결혼이 보다 정제된 인간적 친밀감을 목표로 이뤄진다면 결혼의 의미는 더욱 순수해질 수 있을 것이다.
성관계에서 실제적인 '접촉'이 사라지면서 에이즈 등 각종 질병이 사라지고 여성의 성해방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 사이버 섹스의 보편화로 '순결' '임신' 등 여성에게 지워진 성적 구속이 의미를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래사회는 성적 유토피아가 될까. 햇빛이 밝으면 그늘도 짙은 법.
에이즈가 성적 방종을 일삼는 인류에 대해 신이 내린 '천형'으로 간주되듯 사이버 섹스를 통한 성 탐닉에만 열중하는 인류앞에 '뇌에 발생하는 에이즈'같은 정신적 질환이 나타날 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 구성원의 재생산이라는 성 본연의 기능이 쇠퇴하면서 출산율이 저하되고 사이버 섹스를 둘러싼 비용 문제로 빈부간에 성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상을 낳을 수 있다.
새 천년에는 간통·불륜 등 가정파괴적 행태들이 사라질까. 천만의 말씀. 그때쯤이면 정신적 순결·정조가 중요시돼 자기집 안방에서 사이버 섹스를 즐기다 배우자에게 발각되면 외도를 한 것으로 간주돼 이혼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金嘉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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