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무라카미 류 신작 소설집 출간

입력 1999-07-15 14:13:00

소설집은 단편으로 한 작가의 소설 미학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문학 기제다. 비록 짧은 분량이지만 이야기가 들어있고, 장편이 범하기 쉬운 이완된 소설적 구성을 깊이 있는 문장과 독특한 인물설정, 상상력으로 긴장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 쓰여진 단편소설을 읽는 재미는 장편을 능가하기도 한다.

우리문단의 젊은 이야기꾼 김영하씨와 문학적 통념에 과감하게 맞서는 작품을 써온 일본작가 무라카미 류의 신작 소설집이 각각 출간됐다. 김씨의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문학과지성사 펴냄)와 무라카미 류의 '달빛의 강'(문학동네 펴냄).

등단 5년 남짓한 짧은 기간에 '문학동네 신인작가상' '현대문학상' 등의 문학상 수상경력에서 알 수 있듯 김씨의 글쓰기는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와 통념을 뒤엎는 기발한 상상력, 잘 짜여진 이야기 구조가 돋보인다. 지난해 첫 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프랑스어로 번역출판 될 만큼 그의 역량이 녹록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두번째 창작집인 이번 소설집은 그로테스크한 현실 해석과 섬세하면서도 도발적인 인물설정을 통해 우리 일상을 새로운 시각에서 들여다보는 대담한 상상 세계를 펼쳐보인다. 살해된 사진관집 남자와 담당형사의 이야기를 오버랩시켜 불륜을 저질렀거나 유혹에 빠진 여자의 욕망과 위선 등 내면심리를 세밀하게 그린 '사진관 살인사건'을 비롯 먼 여행을 꿈꾸며 불법복제 프로그램을 통신망에 올려 파는 남녀의 일탈을 묘사한 '바람이 분다', 대학친구의 애인을 사랑하다 투명인간이 된 평범한 은행원의 이야기를 그린 '고압선' 등 9편의 소설이 담겨 있다. 별볼일 없는 초라한 일상인이 꿈꾸는 초월적 욕망은 영상문화의 프리즘을 통해 현대적 일상성의 세계를 묘파한 그의 소설이 눈여겨보는 핵심적인 소재다. 또한 형식면에서 그의 소설의 특징은 '탈장르'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장르를 파괴시키고, 조합하고 모방하는 과정을 통해 온갖 장르가 버무려진 소설을 쓴다. 팬터지나 추리, 무협지, SF 등 원본을 모사하면서도 어떤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 시뮬라크르적 속성을 갖고 있다.

'백조'를 원제로 한 무라카미 류의 '달빛의 강'은 마약과 섹스, 일탈과 광기 등 그로테스크한 주제들을 가볍고 경쾌한 문체속에 담아낸 소설집. 실연의 충격으로 자살을 꿈꾸는 한 여성이 여행중 만난 한 여성과 육체적 접촉을 통해 서로의 상처에 접근하고 치유해 나가는 '백조'와 꿈을 일기에 기록하는 취미를 가진 이혼남을 그린 '장어와 키위 파이와 죽음', 자신을 최악의 여자라고 비난한 남자를 사랑하게 된 창녀의 이야기인 '매너 하우스' 등 모두 9편이 실려 있다.

그의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로 사회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일탈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작가는 삶의 흐름에 떠밀려 부유하는 인간들의 상실감과 고독, 반복되는 건조한 일상속에서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는 외로운 현대인의 초상을 그려내고 있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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