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세기'필사본 번역 출간

입력 1999-07-13 14:10:00

요즘 우리 사학계와 국문학계가 '화랑세기'라는 한 권의 책때문에 논란이 한창이다. 지난 89년 부산에서 처음 32쪽 분량의 축약본이 발견된후 95년 162쪽 분량의 보다 완전한 필사본이 공개돼 과연 신라중기 김대문이 쓴 것을 그대로 베낀 진품인지, 누군가 지어낸 위작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으로 학계가 뒤숭숭하다.

문제의 '화랑세기' 필사본이 '신라인의 신라이야기'(소나무 펴냄)라는 부제를 달고 책으로 출간됐다. 일제때 일본 왕실도서관인 궁내성 도서료에서 일하던 박창화(1965년 작고)가 작성한 이 필사본을 서강대 이종욱교수가 한글로 번역하고 주해를 붙였다. 왜 이 책에 지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을까. 이 책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논쟁이 아니라 한국 고대사 체계를 바꾸는 논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책이 위작이 아니라면 1천300여년전 신라인의 생활과 숨결을 고스란히 들을 수 있게 된다.

'화랑세기'는 540년부터 681년까지 있었던 신라 화랑 32명에 대한 기록으로 김대문이 680년경에 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화랑중의 화랑으로 불리는 '풍월주'들, 1세 풍월주 위화랑에서부터 32대 신공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생활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기존의 화랑에 대한 이미지를 송두리째 깨는 문란한 성관계나 근친혼으로 인한 복잡한 가족관계 등은 충격적이다. 역서에는 각 풍월주마다 복잡한 가족관계표를 보충해 넣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고, 이종욱교수의 논문 2편도 부록으로 실려 있다.

이 책을 둘러싼 공방전을 추적해 보면 정반대되는 두가지 입장이 한치의 양보없이 대치하고 있다. 신라사에 정통한 이종욱교수는 '진본'임을 확신하고 있고 서울대 노태돈교수는 박창화의 '위작'임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이기백·이기동교수 등 한국 고대사학계 주류파와 국문학자 김완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노교수의 주장을 밀고 있는 반면 이재호(부산대 명예교수)·정연찬(서강대 명예교수)·김학성(성균관대 교수)씨는 필사본에 보이는 향가를 볼때 진본쪽에 동조하고 있다. 어떻든 이 필사본이 한문 원문까지 수록돼 완전 번역출간됨으로써 학계뿐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한국사를 새롭게 보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또 당시 왕위계승, 지배세력, 친족 및 골품제도, 정치제도, 불교사상, 국제관계, 제사와 향가, 삼국통일 등 다양한 문제를 새롭게 해명할 수 있는 자료로 인식되고 있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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