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남기행-(27)대구선 이설의 명암

입력 1999-07-12 14:00:00

철도만큼 심지 굳은 것이 있을까. 도로는 횡으로, 또 종으로 쉽게도 나건만 대구에서의 철도 역사는 변함이 없다. 경부선 뚫린 것이 1905년, 대구선 난 것이 1918년. 그렇게 해서 경부선 대구구간 20㎞, 대구선 대구구간 13㎞(K2 군부대 1.3㎞제외)가 요지부동. 100살 나이가 다 되도록 그대로만 살았다.

그러나 대구선만은 작정을 달리했던가. 그 무거운 몸을 마침내 옮길 참이다. 새로운 천년을 맞는 2000년에는 좀 더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었는 지도 모를 일이다. 2002~2003년 쯤이면 대구선 대구구간이 현재의 동구지역을 떠나 그린벨트 지대의 수성구쪽으로 자리바꿈 해 달리게 되는 것.

현재는 동대구역에서 곧바로 금호강을 건너 금호강 북편을 달려 동촌·반야월역을 거친 뒤 대구 시계를 빠져나가 청천역으로 들어서게 돼 있다.

그러나 새 철로는 금호강 남쪽을 달린다. 동대구역에서 경부선 철로를 따라가다 수성구 가천동에서 갈라져 금호강을 횡단하도록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80여년만의 용틀임.

그만큼 떠나는 곳이든 갈 곳이든 변화에 따른 파장이 일고 있었다.

보내는 쪽인 동구는 장밋빛 변화다. 동구 지역의 동편으로 쭉 뻗어가며 동구를 가르다시피 한 대구선으로 말미암아 이 곳 주민들이 끓인 속이 새까맣기 때문. "종전엔 대구선으로 인한 민원이 끝없이 쏟아져 들어왔어요. 지저·검사·방촌동 등지에서 1만여 민원인이 있었다고 보면 될 겁니다"

한나라당 대구 동을 지구당 총무부장 김동윤(43)씨의 말이다. 선거구로 보면 대구선 문제는 온전히 동을 지역에 한정된 것이기 때문에 민원에 가위눌려 온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97년 11월 대구선 이설 공사가 시작되면서 관련 민원은 상당부분 해소됐다.

물론 소음·건널목 사고 문제와 수송관계로 대구선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반야월 저탄장(연료단지), 시멘트 공장으로 인한 분진문제 등은 이설 공사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진행형이기는 하다. 그러나 3~4년만 참으면 옮겨가는 데야.

게다가 이전되고 나면 반야월역 부지(2만9천평)와 동촌역 부지(1만6천여평) 등 현 대구선 해당 부지 9만8천평에는 상업건물이나 아파트 단지가 들어 서 생활환경이 크게 바뀜에 따라 동구의 이미지가 일신, 그 혜택도 녹록찮게 누릴 참인데.

이제는"왜 이설 공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느냐"는 전화 정도란 것이 대구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당초 2001년 1월 완료될 계획이었지만 이설지인 수성구쪽의 문화재 출토와 예산 문제 등으로 조금씩 공기가 지연되고 있는데 따른 불만이지만 예전처럼 성마르진 않다고 했다.

이제 이같은 문제는 대구선이 옮겨가는 지역의 몫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전할 곳이 그린벨트 지역이어서 민원인의 많고 적은 차이는 있지만 사람에 초점을 두면 고통의 질량은 동일한 것이었다.

파크호텔 옆길로 해 고모역을 지나 이른 가천동. 오래전부터 자연부락 형태로 180여호가 모여 포도 재배 등 농업에 종사하며 평온히 살고 있었던 곳이었지만 이설지로 확정되면서 난리가 난 곳이었다. 이곳에 3대째 살고 있다는 토박이 현기훈(44)씨는 "81년 대구가 직할시가 되면서 편입돼 혜택하나 본 것 없이 주민세 등 세금만 더 물고 있다"고 불만의 포문을 열었다. 그러더니 난데없이 웬 대구선이냐는 것이다.

이 곳으로 확정될 당시'대구선 이설 반대위원회'구성에 앞장서 격렬히 항의하기도 했던 현씨지만 이제는 자포자기한 표정이었다.

그는 금호강과 대구선 이설 예정지 사이에 위치한 자신의 포도밭을 가리키며 어떻게 농사 지을 수가 있겠느냐고 푸념했다. 아직은 허공이지만 밭위로는 경부고속도로와 만나기 위해 김해에서 나온 도로가 놓여질 예정이기도 하다.

"20년전 농사만 짓고 살 때는 지금 대구농고 일대 땅 10평 팔아야 가천동 논, 밭 1평 구하던 것이 지금은 이곳 땅 100평 팔아야 그쪽 1평 살 정도가 됐어요"

그는 차라리 대구선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할 반야월 연료단지나 시멘트공장 등도 이쪽으로 들어와 모두 다 수용해 버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100여호가 살고 있는 고모역 주변의 한숨도 길기는 마찬가지. 하루 212회, 공휴일과 일요일이면 230회나 기차가 다녀 5, 6분마다 한대 꼴로 소음 공해에 시달려야 하는 이들은 현재 60여회 운행중인 대구선마저 합쳐지면 가슴을 더 자주 쓸어내려야 할 판이다.

가천·고모동 주민들의 유일한 위로라면 대구선 이설과 함께 지금 겨우 두대의 승용차가 교행할 정도이던 소위 가·고·파(가천~고모~파크호텔)길이 8차선으로 넓어진다는 점. 경산·고산지역 차량들이 출퇴근길에 고산국도(고산~남부주차장)가 복잡해지면 뒷길인 이 길로 달리는 일이 급증, 늘상 아이들 등·하교 교통사고를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생지사 새옹지마'에나 기대하며 살까. 대구선은 이같은 애환들을 뒤로 한채 무심히 그렇게 2000년을 내달릴 것이다.

〈글 : 裵洪珞 사진 : 安相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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