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로 벌집 쑤신듯 시끄러울 때 미국 국민들은 이런 생각의 나래를 폈다.
"이제는 우리도 여성 대통령이 필요하다. 그러면 적어도 르윈스키 스캔들과 같은 성추문에서는 자유로울테니까"
섹스 스캔들 뒤끝에 여대통령론이 불거져 나오기는 했지만 전세계 유권자의 절반이상이 가장 변해야 할 것으로 정치를 꼽는다.
정치에 대한 혐오증을 지닌 나라는 우리나라뿐 아니다. 이탈리아 일본 프랑스 미국 등 정치적 스캔들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이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고 정치를 회피하고 무시했다가는 더 큰 화를 자초할 수밖에 없다. 결국 썩고 혐오스러운 오늘날의 정치를 바로잡는데 이제껏 정치판을 주무른 남성파워와는 다른 힘이 들어가야한다.
사실 연초부터 미국에서는 여성 정치지도자들의 파워가 급부상, 주목받았다.
엘리자베스 돌 전 미국 적십자사 총재, 남편의 섹스 스캔들에 의연히 대처하면서 지지도가 급상승한 힐러리 여사, 10년간 샌프란시스코 시장을 지낸 관록으로 민주당의 유력한 부통령 후보로 꼽히는 다이안 페인스타인 상원의원,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 출신의 크리스틴 휴트먼 뉴저지주 주지사 등이 백악관 입성을 노리며 활발한 정치 보폭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각국에서 여성대통령·총리가 쏟아지고 있는 것과 발맞추어 미국의 여성정치 파워가 급부상하고 있는 것은 1920년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된지 약 80년만의 일이다.
그렇지만 참여 민주주의의 요체인 의회에서 미국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상당히 약하다. 미국여성이 의회에 첫 진출한 1922년 당시 0.2%에서 1988년에 5.2%로, 그리고 1997년에 약 10%(상·하 양원 평균치)로 증가하였으나 이러한 속도라면 2582년, 무려 약 600년을 기다려야 의회에서 양성 평준화를 이룰 수 있다는 계산이어서 상당히 뜻밖이다.
이미 유엔이 여성차별 철폐를 선언하지 오래이나 법과 현실과의 거리는 상당히 멀다. 최근 세계 정당내 여성의 수뇌부 점유율은 아래표와 같다.
세계각국의 의회에서 여성들의 진출은 아직까지 엄청 낮다.
의석의 3분의 1(평균 36.4%)을 차지하는 북구의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를 제외하고 세계여성의 의회진출은 UNDP자료상 12.9%, IPU자료상 11.7%에 그친다. 국제의원연맹(IPU)자료에 따르면 한국여성의 의회진출비율은 119개국 가운데 94위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21세기를 앞두고 세계각국이 여성의 정치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제도적 개혁과 여성의 의식화 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정치의 여성화는 한결 무르익을 전망이다.
특히 현대국가로 접어들면서 가정일과 국가정책이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면서 지역살림을 일구는 생활정치에 여성의 활약이 점차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사회에서 여성 영역으로 간주되던 자녀교육, 남편과의 관계, 가족의 의식주 등은 완전히 개인 영역이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국가가 수질오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여성은 가정의 건강을 책임질 수 없고, 국가가 탁아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여성은 경제생활을 할 수 없으며, 국가가 물가를 잡지못하면 주부는 가족의식생활을 풍요롭게 할 수 없다. 바로 국가와 개인간의 영역이 동전의 양면처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여성이 비록 전통적인 입장을 견지해서 가정에 머무른다고 가정하더라도 더 이상 가정의 일이 개인적인 문제가 될 수 없는데다가 민주주의로의 이행과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여성을 고려한다면 여성의 정치참여는 필연적인 역사의 소명"이라고 조기숙 이대교수(국제대학원)는 말한다.
그러면 왜 정치의 여성화일까.
이는 "여성이 정치를 해야 정치가 살아나기 때문"이라고 조교수는 잘라말한다. 즉 정치를 살려야 경제가 살고, 경제가 살아야 나라가 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 여성이 정치를 해야 정치가 살아날까.
이제껏 남성이 주도해온 정치판의 권력투쟁은 너무 심각하고 부작용이 컸다.
'국회의원 수 반으로 줄이자'는 PC통신의 토론방에서는 국회의원들의 수를 줄이자는데 거의 대부분 찬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의원을 정리해고하자' '난지도 쓰레기장에 갖다 버리자'에 이르기까지 원망과 저주의 폭언이 난무했고 정치불신이 극에 달했다.
군부를 등에 업은 파워엘리트들의 암투와 전쟁, 온갖 환경공해와 투쟁이 그동안 남성정치인들이 이끌어온 발전된 세상의 이면이다.
"하지만 여성은 남성이 갖지못한 것을 가지고 있다. 바로 보살핌이다. 아일랜드 대통령이었던 로빈슨이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치고 재선에 도전하지 않고 유엔의 인권고등판무관의 일을 하기로 결정하자 다음번 선거에서는 네명의 여성 대통령후보가 나와서 유세를 폈는데 그때 가장 활발하게 등장한 단어가 바로 보살핌이었다"는 조교수는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자식 없고, 비뚤어진 자녀를 감싸서 결국 바른 길로 인도하는 여성들의 보살핌이 21세기 정치를 아름답게 수놓으리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여성의 정치참여의 방향이 소외됐던 권리를 되찾기 위하는 선에서 그쳐서는 안된다. 여성의 정치참여가 여성들의 권익향상 뿐 아니라 경제적·정치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한단계 더 끌어올리기 위한 방향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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