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라운드-주빌리 2000운동

입력 1999-07-12 00:00:00

지난달 18일부터 3일간 독일 쾰른에서 열린 G7 정상회담은 전세계 시민운동사에 큰 획을 그었다. 극빈국 외채탕감을 주창해온 '주빌리 2000'의 요구를 선진자본국들이 받아들여 현재 41개 채무국 총외채의 45%인 700억달러를 탕감키로 한 것. 물론 이번 외채 탕감을 선진자본국의 생색내기라며 비난 수위를 한층 높이는 쪽도 있다. 그러나 최근까지 허황된 것으로 보이던 극빈국 외채 탕감이 일부나마 이뤄졌다는 사실은 국제 사회에서 시민운동이 분명한 자리매김을 한 쾌거로 인정된다.'주빌리 2000'은 지난 90년 전(全)아프리카 교회위원회가 아프리카 빚 탕감을 촉구한 것을 계기로 지난 96년 영국에서 본격화된 시민운동이다. 현재 각국 NG0(비정부기구), 종교 및 인권단체들이 참여한 국제연대운동으로 발전했으며, 53개국에 사무소를 두고 120여개국에서 외채 탕감 서명운동을 받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데스몬드 투투 전 남아공 대주교, 달라이 라마 티베트 지도자,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무하마드 알리 전 헤비급 챔피언, 록그룹 U2의 리드싱어 보노 등이 참여하고 있다.

'주빌리(Jubilee)'는 기독교 용어로 '희년(喜年)', 즉 기쁜 해라는 뜻. 모세의 인도로 가나안에 들어간 유태인들이 50년마다 채무자의 빚을 탕감해 주고 노예를 풀어준 데서 비롯됐다. 교황은 94년 교서 '제3의 밀레니엄'에서 2000년을 대(大)희년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가톨릭을 중심을 펼쳐지는 '주빌리 2000'은 2000년까지 2조1천억달러에 이르는 제3세계 외채를 탕감해 줄 것을 요구해 왔으며, 전세계 2천200만명의 서명을 받았다.

'주빌리 2000'의 이번 쾌거는 자본의 세계화에 대한 저항이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IMF 등 국제금융기구를 내세워 '세계적 단일 자본주의 시장' 형성을 꿈꿔오던 미국에 대한 세계민의 반발이 정점에 이른 것이다. 세계화에 대한 저항은 '국제금융질서 개편'과 채무국 권익 옹호를 주장하는 '세계 시민운동'의 두 축으로 나눠볼 수 있다. 특히 '주빌리 2000'과 투기자본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아탁(ATTAC)'이 시민운동의 대표 주자격이다. 여기에 '대구라운드'가 채권-채무국 양방향 국제금융질서 재편을 주창하며 새로이 가세하고 있다. 물론 오는 10월 열리는 대구라운드 국제회의에 '주빌리 2000'과 'ATTAC'은 대표단을 보내 전폭적인 지지의사를 밝힐 계획이다.

그렇다면 세계화와 외채는 어떤 함수관계에 놓여있을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80년 개발도상국의 총외채는 약 6천580억달러였다. 이후 90년 1조5천390억달러, 98년 2조2천억달러로 늘었다. 개도국이 빌리기만 하고 갚지 않았기 때문일까. 82년부터 90년까지 개도국에 흘러든 돈은 9천270억달러. 같은 기간 개도국이 원리금 상환에 쓴 돈은 1조340억달러로 갚은 돈이 빌린 돈보다 많다.

아프리카 극빈국들이 84년부터 현재까지 IMF에 갚은 돈은 꾼 돈의 4배에 이른다. 자원의 보고인 나이지리아의 경우 80년대 IMF 프로그램을 받아들인 뒤 채무국가로 전락, 현재 악성채무국으로 분류돼 있다. 모잠비크는 매년 예산의 33%, 중미 온두라스는 35~44%를 대외부채를 갚는데 쓰고 있다. 유엔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부채상환에 쓰고 있는 돈을 교육, 의료에 돌릴 경우 어린이 2천100만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선진국들은 지난 3년간 증시 팽창으로 5조달러 이상의 부를 축적했으며, 이는 42개 최빈국 외채의 50배가 넘는 규모이다.

대구라운드 준비위원장 김영호 교수(경북대 경상대학장)은 "세계화라는 거미줄에 걸린 개도국들이 제아무리 발버둥쳐봐야 건전한 외채질서 확립이라는 거미줄 제거장치가 없이는 결코 헤어날 수 없다"며 "대구라운드나 주빌리 2000 등이 국제사회의 불필요한 거미줄을 없애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金秀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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