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낮춘 민원실 주민 곁으로

입력 1999-06-25 15:50:00

지방자치법 제정 50주년. 비록 곡절을 겪었지만 올 7월1일이면 본격 민선 자치시대 2기 2년째로 접어든다. 아직도 재정자립도, 자치조직권, 인사권 등은 여전히 중앙에서 쥐고 있어 진정한 지방자치는 요원하지만 21세기 새 천년을 실질적인 지방화와 함께 열어야 한다는 명제는 현실로 다가왔다.

이에 본지는 자치시대의 한 획을 긋는 99년 민선2기 1주년을 맞아 지금까지의 자치시대 공과를 짚어보고 새로운 천년을 열어갈 비전을 제시한다.

지난 4년의 민선시대는 한 마디로 시장.군수가 선출해 준 주민들을 찾는 시민의 시대였다. 과거 임명직 단체장들이 임명권자인 중앙만 쳐다보고 지역민들의 욕구에 대해서는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식의 '중앙통치의지(대통령의 뜻)의 지방적 실현'때와는 달랐다. 임명직이 선출직으로 '형식'만 바뀐 것이 아니라 임명권자보다는 뽑아준 주민에게 책임을 지는 '내용'까지 바뀐 것이다.

문희갑 대구시장은 시장실 팩스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직접 챙기면서 한달에 2번씩 시민들을 직접 만나 고충을 듣는 직소민원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의근 경북도지사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도지사에게 바란다' 코너를 개설, 날마다 민원을 챙기고 답변하며 일선 시.군과 연결된 영상시스템을 통해 오지 주민들과의 대화를 시작했다. 김관용 구미시장은 3층에 있던 시장실을 민선 출범과 함께 1층으로 옮겼다.

지역민들이 느끼는 단체장은 더이상 군림하는 '벼슬'이 아니었다. 적어도 선출해 준 지역민들에게는 그렇게 느끼게 했다. 시장.도지사.군수 등 단체장을 만나려는 민원인들로 부속실은 언제나 만원이다.

행정기관의 변화는 먼저 민원업무에서부터 왔다. 자치단체마다 민원택배제, 생활민원 기동처리반 운영, 민원실명제 등이 경쟁적으로 실시되고 민원실도 민원인 중심으로 바뀌었다.

민선 단체장들이 내건 슬로건은 첫째도, 둘째도 '친절'이었다. 대구시는 시장 이하 간부 전원이 3박4일간 가나안 농군학교까지 가서 교육받았다. 경북도는 전체 공무원들을 2박3일 일정으로 연수보내 자기변화를 통한 친절 생활화를 교육시켰다. 김천시는 삼성에버랜드의 친절운동 전담강사를 초빙해서 친절교육을 시켰고 구미시는 전체 직원들을 직원연수관에 합숙시켜가며 외부 위탁기관에 친절교육을 실시했다. 시.군마다 벌이는 친절교육도 경쟁이었다.

자치단체들은 이와함께 친절 공무원을 포상하는 대신 불친절 공무원을 뽑아 페널티를 주는 이른바 옐로카드제를 통해 친절교육의 현장화에 가속도를 붙였다. 경북도는 지난해 연말 도내 23개 시군별로 친절상황을 종합평가해 본청 6개과와 공무원 10명을 포상했고 경산시는 읍.면.동별 민원행정 종합평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구미시는 99년들어 3명의 불친절공무원을 가려 징계했다. 경주시는 민원봉사자 중심의 공무원 친절 평가단이 읍.면.동과 실.과를 직접 방문, 공무원의 전화친절과 민원인 접견태도 및 민원처리 상황 등을 암행 감찰한다. 상주시는 밝은 민원실 분위기 조성을 위해 매월 민원실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스마일 콘테스트를 연다.

자치단체마다 민원실 환경 바꾸기, 민원행정 아이디어 찾기에 앞다퉈 나섰다. 민원실의 구조개편과 함께 PC통신, 민원인전용 팩스 등 사무기기의 지원에서 휴대폰 배터리 충전기까지 민원실이 지역민의 사랑방으로 자리잡고 있다. 비교적 주차장이 넓은 편인 경북도는 최근 직원 주차장 일부를 민원인용으로 넓혔다. 성주군은 군내 10개 읍.면장실을 주민상담실로 바꾸고 읍.면장들은 민원실로 전진 배치했다. 영덕군은 읍.면별로 5일장이 서는 날이면 오전 7시부터 민원실을 개방하고 있고 의성군은 장날 순회 이동민원실을 운영하고 있다. 울릉군은 관광철인 5월부터 8월까지는 여객선 터미널에 민원창구를 개설해 주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이런 사실들로 민선시대의 성과를 결론짓는 것은 아직은 성급하다. 또 부정적인 반응도 만만찮다. 민원실 편의시설을 확장한다며 멀쩡한 집기를 교체하거나 효용도 없는 PC를 설치하는 등 과잉 비품비치로 예산을 낭비한다는 지적도 있다. 친절경쟁과 민원 암행감찰에 따른 직원간 불신조장도 지적됐다. 지역민을 만나도 소위 표가 되는 전시성 행사만을 찾아다닌다는 비난도 사고 있다. 집단민원이 발생하거나 이해가 상충하는 문제들은 법규나 소신없이 미뤄버린다는 비난도 있다.

그러나 민선시대의 변화임은 분명하다. 더욱 분명한 것은 단체장이나 공무원들의 변화만큼 지역민들도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심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李敬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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