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에는 '성제'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4학년이죠. 처음 맡게 됐을 당시에는 한글을 읽을 줄 몰랐고 구구단도 외우지 못했죠. 수학시험은 보았다 하면 한자리 점수였고.
그런데 성제에게도 잘하는 면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체육'이었죠. 신체조건도 좋지 않으면서 정신력 하나로 육상부에서 열심히 연습을 하고 대회에 나가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느끼고 있는 듯 했죠.
가정환경이 좋지않아 급식면제를 받으면서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활발한 모습이 참 좋아보였습니다. 오락시간이나 생일잔치 때엔 꼭 재미있는 꺼리를 만들어 아이들이나 저에게 웃음을 선사해 주곤 했죠.
하지만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모습에 안되겠다 싶어 몇명의 아이들과 함께 나머지 공부를 시켰어요. 그 결과 지금은 구구단도 외울 수 있고 곱셈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됐죠. 더듬더듬 책도 읽을 수 있게 됐고.
그런데 오늘 성제가 복도에 서 있었어요. 지각을 하면 복도에 서 있는 것이 우리반의 규칙이라서 저는 지각을 한 걸로 생각을 했죠.
"지각했니?" "아뇨" "그런데 왜 여기 서 있어?" "선생님. 저 집에 가봐야겠어요" "왜?" 전 성제를 빤히 쳐다보았죠. "저희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전 그 말을 듣고 방망이로 한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습니다. 눈물을 글썽거리는 성제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당황스러우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서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을 참아내느라 목이 메어 오더군요.
뭐라 말해야 할지 정말 혼란스러웠죠. 그래서 기껏 생각해 낸 말이, "그럼, 빨리 집에 가봐라" 집으로 향해 걸어가는 성제의 뒷모습을 보면서 전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 절박한 상황인데도 학교에 나와서 저에게 말을 하려 했다는 사실에 더욱 슬펐습니다.
교사로서 제가 지금 성제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다는 사실에 몹시 화가 납니다. 성제가 슬픔과 충격으로부터 빨리 벗어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다시 학교에 오는 날 성제를 예전보다 더 사랑해 주렵니다.
박미아(경기도 시흥시 은행초등학교 교사)
'교육일기'는 학부모와 교사들의 경험과 생각들을 함께 나누고자 만든 자리입니다. 자녀나 학생들을 키우고 가르치는 과정에서 겪은 체험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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