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공간-(20)천주교 대구대교구청

입력 1999-05-25 14:00:00

어느 도인(道人)이 말했다. 산을 내려와 도심에만 들어서면 속인(俗人)이 돼 버린다고.

'고요속의 고요는 참 고요가 아니다'(靜中靜은 非眞靜). 그런 의미에서 도심속의 성지(聖地)는 '참 성지'가 아닐까.

인간은 거대한 것을 보면 숙연해진다. 천주교 대구대교구청(대구시 중구 남산동)에 들어서면 마을이 경건해진다. 건물이 거대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아담하게 위치한 건물들이 소담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저절로 옷을 여미게 하는 것은 왜일까. 적벽돌 건물이 주는 묵직함과 안정성, 성역(聖域)에 서린 기운들 때문일까.'평화가 여러분과 함께'라는 입석이 있는 정문을 지나면 아름드리 히말라야시더와 느티나무가 양편으로 선 길이 100여m 이어져 있다. 그 끝에서 다시 굽어 들면 성직자 묘지로 가는 길.

교구청은 본관을 중심으로 좌측에 성모당(성모 동굴), 길 건너 샬트르 성(聖)바오로 수녀원의 코미넷관, 정면의 대구가톨릭대의 옛 성 유스티노신학교 건물 등이 모여있다. 모두 1910년대 한국 근대건축의 태동기때 만들어진 유서깊은 건축물들이다.

초대 대구교구장 드망즈(안세화)주교는 1911년 루르드 성모께 세가지 청원을 했다. 루르드성모는 프랑스 파리근교 루르드의 시골 처녀 엘리자베스에게 현신한 성모. "주교관과 신학교(성유스티노), 주교좌성당(계산성당)을 증축할 수 있게 해주면 가장 좋은 곳에 루르드동굴과 유사한 동굴을 세워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세워진 것이 성모당(대구시 유형문화재 제29호)이다. 건물의 설계와 모형은 루르드동굴을 그대로 모방했다. 크기는 약 3분의 1정도. 뒷면이 약간 꺾여 들어간 장방형으로 암굴처럼 꾸며진 내부에 성모상을 모셨다. 앞에는 성모를 향해 기도하는 엘리자베스 성녀상을 두었다.

화강석 기초위에 흑벽돌(오래돼 지금은 회색이 됐다)로 버팀벽과 수평띠를 세우고 나머지 부분에 붉은 벽돌을 채워넣었다. 면도날 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벽돌쌓기가 정교해 성모당 건축에 대한 '지극한 정성'을 가늠케 해준다.

큰 아치와 작은 아치의 적절한 배치와 각부분의 비례구성이 특히 아름답다. 윗부분에 쓰여진 'EX VOTO IMMACULATAE CONCEPTIONI'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바친 허원(許願)에 의하여'란 뜻. 1911과 1918은 대구대교구가 설립된 연도와 성모당 건립 연도다.

성유스티노신학교 건물(대구시 문화재자료 제23호)은 1914년 완공당시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처음에는 갈고리 모양이었으나 지금은 T자형으로 바뀌었다.

서울 명동성당의 건축에 참여했던 프와넬신부가 건립계획을 세워 1913년 착공, 1914년 완공해 그해 10월 3일 개교했다. 계산성당처럼 중국 벽돌공을 동원해 직접 벽돌을 구워가며 지었다.

성당 종탑을 중심으로 양쪽에 아케이드(연속 아치)로 노출 회랑(복도)을 만들어 놓은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이 고풍스런 맛을 더한다.

1919년경 한복을 입고 이 신학교 교정에서 뛰어놀던 학생들의 사진을 취재전 보고 간 터라 옛 정취를 느껴보려고 했으나 요령부득이다. 건물 주위를 돌아가며 신축건물들이 웅장하게 서 있는데다 말쑥한 차림의 대학생들이 '시간 여행'을 막는 것이다.

코미넷관(대구시 문화재자료 제24호) 역시 드망즈주교가 1915년 지은 수녀원이다. 교구사(史) 화보(畵報)를 보면 드망즈주교는 무성한 머릿결같은 턱 수염을 한 건강한 모습. 눈빛이 온화하다. 그가 대구대교구에 뿌린 씨앗이 얼마나 큰 지 이번 취재로 가늠이 된다.

'금남의 집'이란 느낌 때문인지 수녀원에 들어서면서부터 조심스럽다. 안내를 맡은 이고레띠수녀는 "건물 전체가 마음을 들어올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그러고 보니 모든 건물 선(線)이 한 곳으로 모아지고 있고 향하는 곳이 하늘이다. 역사관(옛 성당건물·1927년 증축)의 천정도 리브(Rib. 총탄의 끝부분처럼 돔형의 곡선을 이루는 것)형이고 지붕도 모임지붕형에 창도 모두 아치형이다. 지붕끝에는 마치 신심(信心)을 쏘아 하느님께 보내려는듯 전자총처럼 뾰족한 양철 장식을 달았다. 성유스티노 신학교도 그러하다.

코미넷관은 T자형의 원 건물에 보육원, 성당 등 건물들을 덧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부는 조금씩 변형됐으나 전체 건물 구조는 80여년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로마네스크와 고딕풍을 순수하게 구현한 서구식 건물로 창과 적벽돌 벽의 조화, 빛과 그림자의 절묘한 실내 명암 대비, 정갈한 목조바닥, 틈하나 없는 깔끔한 벽면 등이 자못 성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코미넷은 불어로 '공동의 장소'란 뜻. 현재 150여명의 수녀가 수도생활을 하고 있다. 70년대 윤정희 여운계 주연의 영화 '목소리'의 촬영장소가 되기도 했다.

이들 건물들은 당시 건축의 신소재인 벽돌을 사용한 점, 서구의 건축양식이 대구에 본격적으로 도입됐다는 점, 현재까지 당대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적으로 귀중한 건축물들이다.

건물들마다 모두 표정을 갖고 있다. 웃기도, 찡그리기도 하고, 심드렁해 하기도 한다. 교구청내 건축물들은 정갈하고 차분하며, 내적 평화로 가득찬 구도자의 표정이다.

〈글·金重基기자 , 사진·李埰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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