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명퇴교사의 멍든 가슴

입력 1999-05-08 14:07:00

'다시 태어나도 나는 이 길을 가겠다'고 다짐하는 교직에 긍지를 가진 선생님들이 정든 학교를 미련없이 떠나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현실을 바라볼 때 이 나라 교육의 앞날이 심히 걱정됩니다.

묵묵히 가르치는 일로만 살아가는 수 많은 교육가족들에게 후유증을 남기고 있는 정년단축은 분명히 교권을 짓밟는 인권유린이요, 교육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있습니다.

명예퇴직 희망자가 늘어나고, 교원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되어 가는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예기치 못할 일들이 여기 저기 터지고 있습니다.

며칠 전 대구에서 일어난 여교사 폭행사건.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숙제를 하지 않았다고 꾸지람을 하는 여선생님을 구타, 선생님의 입술이 찢어지고 이가 부러지고 급기야 배를 얻어 맞고 교실에서 쓰러지고 말았다는 보도를 접할 때 할 말을 잊었습니다. 거기에다 이 장면을 보고만 앉아있는 기(氣)가 죽은 학생들,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도 불의(不義)에 대항하는 용기도 없는 학생들, 이런 모습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라면 뜻있는 시민은 모두 눈 앞에 다가선 교육위기를 걱정할 것입니다.

누구의 책임이냐고 따지기 전에 전 국민이 대오각성(大悟覺醒)하여 바람직한 교육풍토를 바로 잡는데 구슬땀을 흘려야 합니다.

체벌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람직한 교육정책은 체벌 유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을 21세기 국제사회 흐름에 잘 적응하도록 어떻게 교육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남의 나라 교육방법을 기준으로 체벌은 무조건 나쁜것이다, 없애야 한다는 흑백논리로 일관하는 것은 우리 현실을 모르는 성급한 판단이라고 지적하고 싶습니다.우리 실정에 맞는 교육정책, 우리 국민의 정서와 체질에 맞는 지도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교육정책 입안자들에게 부탁합니다. 무능의 기준을 나이로 정한다는 것은 위험한 사고방식입니다. 무능은 결코 나이가 아니고 그 사람의 쉼없는 노력과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정년단축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나이는 무능으로 변색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나이는 경륜이라면서 교사들의 나이는 무능으로 해석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논리입니다. 세월 따라 나이먹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지 무능이 아닙니다. 교단에서 쌓아올린 높은 인격과 풍부한 경험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졸속행정에 다름 아닙니다.

'정년단축'이란 명예롭지 못한 선물을 가슴에 안고 선배 후배 구별없이 함께 떠나려는 퇴출교사들은 그래도 교육계의 앞날을 걱정하며 하루빨리 건강하고 바람직한 교육풍토 조성이라는 밝은 태양이 솟아 오르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99년 스승의 날에는 '우러러 볼수록 기쁨을 준다'는 노래대신 퇴출을 마음먹은 이 교사의 가슴에 차라리 검은 리본을 달아주는게 낫지 않을까요.

박 이 근 (대륜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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