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물살이 연푸른 낙동강을 끼고 산모롱이를 구비구비 돌아간다. 길이 끊기는가 했더니 이번엔 제법 가팔막진 재. 다람재. 다람쥐가 많았던 때문일까. 고갯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광은 제법 절경이다. 뒤엔 나지막한 산, 앞엔 낙동강.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마을이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35.
재를 넘어서자마자 마을 초입에 도동서원이 나타난다. 시속(時俗)에 초연한듯 꼿꼿한 자세, 그러나 넉넉한 가슴을 열어보이는 풍모가 얼핏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다. 보물 350호. 400여년 풍상을 견뎌온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서원지기인양 거대한 팔을 벌리고 서있다.
조선 5현(五賢)의 한분인 한훤당(寒暄堂)김굉필(金宏弼·1454~1504)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한 서원. 선조(宣祖) 원년(1568년) 유림에서 현풍현 비슬산 기슭에 세워 쌍계서원(雙溪書院)이라 했으나 임진왜란때 불에 타버렸다.
선조38년(1605년) 현재 위치에 사우(祠宇)를 새로 지어 당시 동리이름을 따 보로동(甫老洞)서원이라 불렀다. 제당(祭堂) 등 다른 건물들은 한훤당의 외증손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과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이 사림의 협조를 얻어 건립, 선조40년(1607년) 사액서원(賜額書院: 임금이 사당이나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 그것을 새긴 편액을 내린 곳)으로 승격됐다. 공자(孔子)의 도(道)가 동쪽으로 왔다하여 도동서원으로 바뀌고 동리이름도 도동으로 개칭됐다. 마을사람들은 임금에 의해 동리이름이 새로 지어진 곳은 전국에서 이곳이 유일하다며 자부심이 대단했다.
현재 이곳 서원엔 한훤당과 도동서원 건립에 공이 큰 한강이 함께 모셔져 있다. 구한말인 고종2년(1865년), 대원군의 서릿발같은 서원철폐령으로 전국의 650개 서원이 추풍낙엽처럼 훼멸됐을때도 도동서원은 전국 47개 중요서원의 하나로 제외돼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도동서원은 완만한 산비탈을 따라 북동향으로 비스듬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1천634평 면적에 10동의 건축물. 맨먼저 객을 맞는 것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의 수월루(水月樓). 건듯 불어오는 강바람속에 봄농사가 시작된 인근 밭들로부터 풍겨오는 농민의 향수(?)가 코를 괴롭히지만 그 옛날 필객들이 달빛아래 낭랑하니 읊었던 시구들이 귀에 들리는듯 낭만적인 분위기이다.
수월루 바로 뒤 환주문(喚主門)을 들어서면 중정당(中正堂)이라 불리는 강당(講堂). 옛날 유생들이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높은 댓돌위에 세워진 정면 5칸, 측면 2칸반의 홑처마 맞배지붕의 건축물. 나무원래의 색상이 오랜 세월 비바람에 닦여져 정갈하고도 기품이 있다. 좌우에 격자무늬 방문의 온돌방 한칸씩이 있고 가운데 3칸은 앞면이 툭 트인 전형적인 대청이다. 마루 맨안쪽 천장 바로밑 벽에 선조께서 하사한 도동서원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또 중정당 앞쪽 처마밑엔 퇴계선생의 글씨를 집자했다는 편액이 걸려있다.
중정당을 사방에서 받치고 있는 기단은 네모나게 반듯자른 큼직한 돌들을 쌓은 것이 무려 높이 150cm정도나 된다. 돌기단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의 용머리 4개가 툭툭 튀어나와 있다. 이중 정면서 봤을때 왼쪽에서 두번째 것만 조선조 당시의 용머리이고 나머지 3개는 새로 만들어져 약간 색깔이 다르다. 중정당에 오르는 돌계단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엔 다람쥐가 올라가는 형상, 왼쪽편엔 다람쥐가 내려오는 형상의 돌조각도 있어 이채롭다. 또 기단위 중앙에 유생들이 밤늦도록 학문을 논하느라 솔(松)가지를 묶어 관솔불을 밝혔다는 돌로된 화대(火臺)도 있다.
중정당을 사이에 두고 당시 유생들이 공부했던 거인재(居仁齋), 거의재(居義齋)두채의 건물이 서로 다정하게 마주보고 있다. 모두 방 한칸과 마루가 딸린 3칸규모에 홑처마 맞배지붕. 강당의 동편엔 경현록(景賢錄) 판각을 보관하는 장판각(藏版閣)이 자리잡고 있다. 서편에는 넙적한 돌단이 하나 있는데 제관들이 제사에 쓸 돼지를 묶어 올려놓고 건강한 것인지 여부를 검사하던 곳이라고 이곳 유사였던 한훤당 14대손 김한동(金漢東·67)씨가 들려주었다.
중정당 뒤편 돌계단을 올라가면 한훤당과 외증손 한강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사당이 있다. 질박한 멋의 중정당과 달리 단청이 칠해져 화사해 보인다. 사당 서편엔 제수음식을 마련하던 장소인 증반소(蒸飯所)가 있다.
이곳 도동서원 건축양식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앞서 소개한 중정당의 돌기단과 서원전체를 둘러싼 돌담장, 또 경사진 지형에 세워진 서원을 오르기 쉽도록 중간중간 쌓여진 돌기단 등이다. 불그스름하거나 푸르스름한 색깔이 언뜻언뜻 배인 돌들은 색상의 조화도 그러려니와 질서정연하게, 때로는 약간씩 어긋진 돌들이 기하학적 구성미를 최대한 살려 차곡차곡 포개진 것이 매우 아름답다. 특히 기와를 얹은 맞담은 한국적 정취가 뛰어난 아름다운 돌담으로 전국에서 돌담으로서는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돼 있다.
중정당에서 사당으로 올라가는 양옆의 정원 역시 전형적인 조선조 계단식 정원이 지닌 독특한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도동서원은 지난 73년에서 80년사이 기와나 일부 서까래 등 부분적으로 개보수했으며 대부분은 선조당시 건축한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글 全敬玉 문화부장·사진 鄭在鎬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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